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남에게 베풀 때는 보답 바라지 말라" 기대하면 오히려 마음 괴로워지죠
입력 : 2025.05.08 03:30
| 수정 : 2025.05.08 03:31
채근담
홍자성 지음|안대회 평역|출판사 민음사|가격 3만원
홍자성 지음|안대회 평역|출판사 민음사|가격 3만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죠. '어느 쪽이 좋은 선택일까' '어떻게 하면 덜 후회할까'와 같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이러한 고민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명나라의 만력제(재위 1572~1620) 시기 활동했던 문인입니다. 저자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매우 적지만,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청년기부터 숱한 역경을 겪었다고 해요. 게다가 명나라 말기엔 정치 부패가 심해지며 극심한 사회 혼란이 있었습니다. 저자 역시 나이가 들어서야 저술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죠.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채근담'은 나물 뿌리를 씹는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풀뿌리를 씹을 정도의 각오가 있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라는 옛말에서 따온 것이지요.
저자는 뻔한 조언만 늘어놓지 않습니다. 책엔 "마음을 굳이 맑게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마음이 괴로울 때 사람들은 현실을 잊으려는 동시에 애써 즐거운 일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마음이 괴로운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방법은 아니지요. 그래서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게 무엇인지 차분히 바라보고 본래의 마음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고통과 번뇌가 때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저자가 말합니다. 삶은 원래 고난과 행복이 교차하는 것이므로, 순간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고요. 지금 마음이 괴로운 상황일 수도, 반대로 만사가 뜻대로 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러리라 여기면 좌절해 쓰러지거나 오만해지게 되지요. 저자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고 순환하고 변화한다"며 감정의 파도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사람 사이 관계입니다. 저자는 "남에게 베풀 때는 보답을 바라지 말라"고 조언해요. 보답을 바라면 베풀고자 한 선의가 끝내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특히 "남들이 나를 욕하든 칭찬하든 내버려두고, 그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여라"라는 구절은 남의 시선에 예민한 현대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행복은 특별한 성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한 끼 식사와 '흔해 빠진' 일상에 인생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작고 소중한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큰 고민이 생기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 조용히 이 책의 문장을 곱씹어보기를 권합니다. 나물 뿌리를 씹듯 찬찬히 음미하는 그 시간이 다시 한번 인생의 중심을 잡게 해줄 것입니다.
이진혁 출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