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해와 달은 왜 '나날'이 됐을까" 日·獨語 쓰는 소설가가 본 말의 본질
입력 : 2025.05.01 03:54
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 지음|유라주 옮김|출판사 돌베개|가격 1만3000원
다와다 요코 지음|유라주 옮김|출판사 돌베개|가격 1만3000원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창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 창은 세상을 왜곡해 보여주기도 해요. 생각은 언어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언어라는 창 너머를 바라보게 합니다. 독일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인 저자는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여행자'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언어가 변해 온 여정을 기록하며 사람과 언어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이 책의 중심엔 '엑소포니(Exophon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익숙한 모어(母語)를 벗어나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행위를 말하지요. 저자는 다양한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의 말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해요.
저자는 베이징, 함부르크, 로스앤젤레스, 마르세유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을 바탕으로 언어에 대한 통찰을 담아냅니다. 저자가 바라본 언어는 마치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생명체' 같습니다. 이를테면 독일어 '기차(Zug)'는 '끌다(Ziehen)'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해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독일어로 '교제(Beziehung)''이사(Umzug)''옷을 입는다(Anziehen)'라는 표현도 모두 '끌다'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어떤 '끌림'의 연속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번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특별합니다. 저자는 "오역(誤譯·잘못된 번역)이란 짐을 지지 않고는 여행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번역'은 없습니다. 모든 번역은 어긋날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어긋남이 오히려 문학을 살아 있게 한다는 거예요. 가령 '나날'을 뜻하는 일본어 '日月'을 직역하면 '해와 달'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휴대폰 등에 표시된 숫자를 보며 날을 세지만, 과거엔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걸 보며 날이 지나가는 것을 알지 않았겠냐는 것이죠. 오역이 단어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는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에 담긴 생각은 심오하지만, 생동감 있는 여러 에피소드 덕분에 어렵게 읽히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굴욕적인 순간조차 숨기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자는 불가리아에서 "이곳에서 러시아보다 먼저 키릴 문자를 썼나요?"라고 물어 차가운 눈초리를 받은 경험을 들려줍니다. 그러곤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질문이 중국인에게 "중국이 일본보다 한자를 먼저 썼나요?"라고 물은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말이죠. 저자는 이러한 실수마저 어리석음이 아니라 여행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책을 읽고 나면 언어란 '안전하고 견고한 집'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는 장소임을 깨닫게 됩니다. 독자를 모어 바깥 세계로 데려가 언어를 낯설게 보고, 다시 사랑하게 하는 힘을 지닌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