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철학·인문학 이야기] 천재 철학자, 시 읽다 북받친 이유는? 억눌렸던 감정을 문학이 보듬어줬죠

입력 : 2025.04.29 03:30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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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사진>은 '영재'였습니다. 그는 세 살 때 이미 그리스어를 배우고 '플라톤 대화편' 같은 고전도 읽었다고 해요. 여덟 살 때는 라틴어를 배웠고, 열세 살 무렵부터는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경제 사상가 제임스 밀이었어요. 그는 지식을 욱여넣는 식으로 아들을 닦달하지 않았습니다. 산책하며 밀에게 공부한 내용을 설명하게 하고 아들과 토론했대요. 자연스레 '탐구 중심의 자기주도학습'을 이끌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밀이 자신에게 배운 것을 동생들에게 설명해 주게 했습니다. 익힌 내용이 완전히 몸에 배도록 하려는 것이었어요.

밀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랐습니다. 그 결과, 10대 초반에 유명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의 사상을 알리는 활동에 참여했고, 열여덟 살에는 당시 최고 직장이었던 동인도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밀의 경력은 요즘 말로 하면 '7세 고시 신화'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런 밀에게도 큰 부작용이 있었어요.

1826년, 스무 살 청년 밀은 정신적 위기에 빠져듭니다. "내 삶의 모든 목적이 다 이루어졌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과연 나는 행복할까?" 스스로 던진 이 물음에 밀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대요. 너무 빨리 성공한 그는 어떤 성취를 이뤄도 기쁨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영재로서 사회 명사들과 어울리느라 또래들과는 가까운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사회 활동을 이어갔어요. 영혼이 무너진 채로, 오랜 습관으로 기계처럼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감성을 헤아리고 보듬어 주지 않을 때, 마음은 병들기 마련입니다. 밀이 바로 이런 상태였어요. 어느 날 그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들을 읽으며 억눌렸던 감정이 쏟아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정은 아무리 참는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지요. 그리고 밀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 흔들리던 정신을 조금씩 추스르게 됩니다. 아내와의 동지애에 가까운 사랑을 통해 평온함도 찾게 되고요.

밀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석양에 빛나는 구름은 아름답다. 과학이 구름은 수증기이고 저녁놀은 빛의 산란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해도 감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은 논리적인 생각을 흐리는 오류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삶을 풍요롭게 하지요. 젊은 밀은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철학자로서 밀이 쓴 '자유론'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동인도회사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고위직까지 올라갑니다. 말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참정권과 비례대표제 논의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밀이 쓴 자서전은 성공을 자랑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는 솔직하게 영재였던 자기 삶의 어두움도 드러내지요. 우리 사회에도 밀처럼 정신적인 위기에 빠진 영재들이 있을 겁니다.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