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뇌 센서로 생각 읽어… 전신 마비 환자도 말할 수 있어요
입력 : 2025.04.29 03:30
BCI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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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진봉기
사연의 주인공은 당시 46세의 케이시 해럴이에요. 건강에 별문제가 없던 해럴씨는 4년 전에 갑자기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어요. 루게릭병에 걸리면 온몸의 근육이 천천히 마비돼요. 2018년 세상을 떠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평생 루게릭병에 시달렸죠. 해럴씨는 특히 안면 근육이 빨리 마비되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과학자들은 해럴씨의 대뇌피질에 전극 256개를 이식했어요. 대뇌피질은 우리 뇌 겉부분을 덮고 있는 얇고 주름진 층이에요. 전극을 통해 뇌에서 나오는 신호를 실시간으로 포착한 뒤 컴퓨터를 통해 이 신호를 해석했죠.
각각의 전극에는 수십 개의 '미세 돌기'가 달려 있어서 해럴씨가 말을 하려고 입이나 입술, 턱 근육을 움직이려고 할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감지했어요. 이런 식으로 해럴씨의 뇌 신경세포에서 어떤 전기 신호가 나오는지를 8개월 동안 분석하고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과학자들은 과거 해럴씨가 건강할 때 남겼던 대화 기록을 인공지능에 입력했고, 해럴씨의 목소리도 입혔어요. 인공지능은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해럴씨의 음성으로 바꿔주었습니다. 해럴씨가 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 함께 있던 가족들 모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이렇게 뇌의 전기 신호를 분석해 말을 하거나 사물을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라고 합니다.
뇌와 컴퓨터 연결해 생각 읽어요
사람의 뇌는 몸의 특정 근육에 신호를 보내 어떤 동작을 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사람의 뇌에는 860억개에 달하는 신경세포(뉴런)가 있는데요. BCI는 뇌의 전기 신호를 포착하고 해독하는 기술이에요.
BCI는 100여 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연구해 왔어요. 독일 과학자인 한스 베르거가 1920년대에 뇌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인간의 두뇌 활동을 기록하면서 BCI 연구가 시작됐어요.
뇌의 전기 신호를 분석하는 '뇌전도' 기술이 세상에 등장한 지 한 세기가 흘렀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뇌의 전기 신호를 수집하는 장치가 더 정교해지고, 이를 분석하는 데 인공지능이 쓰이면서 더 빠르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해졌을 뿐이에요.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방식은 머리에 전극이 달린 헤드셋을 써 뇌파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간접적인 방식은 안전한 대신 뇌의 전기 신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최근엔 얇고 작은 금속 전극을 뇌에 직접 삽입하는 방식이 많이 쓰입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세운 BCI 기업인 뉴럴링크(Neuralink)가 이 방식을 쓰는 대표적인 기업이에요. 뉴럴링크는 두개골에 동전 크기의 구멍을 낸 다음 전극을 뇌 표면에 붙이거나 뇌 깊숙이 삽입해서 신경 세포와 컴퓨터를 연결했습니다. 부드러운 폴리머 재질 위에 전극을 얹어서 몸의 거부 반응도 최대한 줄였어요.
더 안전하고 효율을 높인 방식도 등장하고 있어요. 미국의 또 다른 BCI 업체인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은 뇌에 삽입하지 않고 뇌 표면에 올려두기만 해도 신경세포가 전달하는 전기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어요. 이 장치는 와플처럼 생긴 격자 모양으로, 10마이크로미터(㎛)마다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요. 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m랍니다. 이 구멍마다 배아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신경세포를 하나씩 심어 놓았죠. 이 장치를 뇌 표면에 올려두면 작은 구멍을 통해 신경세포가 자라나 뇌와 연결됩니다. 이 신경세포를 통해 뇌에서 전달받은 신호를 컴퓨터로 읽어내는 거예요.
장애 극복에서 정신 질환 치료까지
그동안 BCI는 주로 루게릭병이나 뇌졸중 등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환자들을 돕는 데 쓰였어요. 하지만 과학자들은 앞으로 BCI 기술이 더 발전하면 훨씬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뇌의 전기 신호를 분석해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증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어요. 뇌 신호를 키우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행동을 개선하는 치료법이에요.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해요. 초음파를 이용해 뇌를 자극해서 약물중독이나 뇌전증을 치료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어요.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BCI 기술은 뇌에 전극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 과정에서 뇌를 다칠 위험도 있어요. 출혈이나 감염이 생기거나, 신경세포가 손상될 수 있는 것이죠.
BCI 시스템이 해킹당할 우려도 있습니다. 이 경우 사람의 뇌 신호를 몰래 읽거나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BCI 기술
BCI(Brain-Computer Interface)는 사람이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의 전기 신호를 읽어내 의사소통하거나 외부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이에요. 근육이 마비돼 말하기 어려운 사람도 생각만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요. 뇌에 직접 센서를 부착하는 방식과 헤드셋 등을 이용해 두피에서 신호를 읽는 방식 등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