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소년의 모험 그린 소설 '보물섬'… 사실 제국주의 시대 모습 담겨 있대요
입력 : 2025.04.28 03:30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동아시아의 전통 인문학 분야는 이른바 문사철, 그러니까 문학·역사학·철학입니다. 각각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 사람이 살아온 내력, 사람이 깊이 생각하여 성찰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인문(人文)이란 '사람의 무늬'이자 사람과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역사학부 주경철 교수가 쓴 이 책은 허구의 이야기인 문학과 기록에 바탕을 둔 현실인 역사가 어우러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솝 우화부터 단테의 '신곡',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등까지 모두 23편의 문학 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천국이나 지옥이 아닌 '연옥'이 나옵니다. 연옥은 천국에 가기엔 모자라고 지옥에 가기엔 아까운 영혼들이 잠시 머물러 죄를 지우는 곳입니다. 연옥 개념이 탄생한 것은 유럽 문명이 중세 후기로 접어들며 겪은 사회적·종교적 혁신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서양 중세 사회의 전성기인 12~13세기엔 봉건적 질서가 완성되면서 상공업과 도시가 발전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과거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삶이 바뀌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으론 인간 존재를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워졌고, 이런 사회·경제적 변화를 장엄하게 그려 보여준 것이 바로 단테의 '신곡'이라는 것입니다.
19세기 말 발표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은 만화나 영화로도 자주 제작되었지요. 소년 짐 호킨스의 모험과 성장이 핵심입니다. 당시는 영국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르던 시대였어요. 저자는 짐이 해외의 보물을 얻고 돌아와 자립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시대 모습이 담긴 성장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 대한 저자의 해설도 흥미롭습니다.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타고 전 세계 해저를 누비는 네모 선장.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세계 기계 산업의 협업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잠수함의 뼈대는 프랑스 제철소, 구동축과 철판은 영국 회사, 기계류는 독일 회사, 정밀 부품은 미국 회사가 만든 것을 사용했다는 것이죠.
저자가 서문에서 한 이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 배경을 따지기도 하고 역사 연구 성과를 작품에 투영해 해석하려는 (나의) 성향이 드러나곤 할 것이다. 학생들과 얘기할 때마다 느끼지만 모두 같은 책을 보고도 너무나도 다른 생각들을 펼쳐 보이곤 한다. 누구나 그런 영혼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한다. 즐거움으로 시작하여 지혜로 끝나는 것!"
그렇습니다. 각자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펼쳐지면서 조화를 이뤄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혜를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그것이 인문학의 효용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