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신의 불빛'이라 불린 아일랜드 등대… 항로뿐 아니라 순례길도 밝혔대요

입력 : 2025.04.17 03:30
[재밌다, 이 책!] '신의 불빛'이라 불린 아일랜드 등대… 항로뿐 아니라 순례길도 밝혔대요
등대의 세계사

주강현 지음|출판사 서해문집|가격 2만원

GPS(위성항법장치)가 없던 시절, 바다를 누비는 선원들에게 등대는 '생명줄'과도 같았습니다. 비록 오늘날엔 점점 사라져가고 있지만, 등대는 인류 역사에서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요. 문명이 확장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그 등대를 통해 문명사를 조망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해양문명을 연구해온 학자로, 등대의 변천을 통해 문명과 문화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보여주지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등대 중 하나는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파로스 등대'입니다. 높이 130m에 달하는 이 웅장한 구조물엔 당시의 최신 기술이 집약돼 있었어요. 밤에는 불꽃을, 낮에는 거대한 반사판을 이용해 최대 수십 ㎞ 떨어진 곳까지 빛을 비추었습니다. 이 등대는 단순한 안전 시설을 넘어 알렉산드리아의 번영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했습니다.

스페인 북서부 라코루냐주에서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는 헤라클레스 등대는 로마 제국이 세운 등대였습니다. 이 등대는 오늘날까지 작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약 1900년 동안 바닷길을 안내하고 있지요.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막이 오르면서 등대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에 있는 상비센테 등대는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에서 대서양과 아프리카로 통하는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엔리케의 탐험이 시작했어요. 그가 후원한 탐험 이후 유럽 국가들의 해외 식민지 개척이 시작됐지요. 이 때문에 상비센테 등대는 바다를 정복하려는 유럽의 야망과 식민주의 역사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등대도 있습니다. 13세기 수도사들이 세운 아일랜드의 훅 등대는 바다를 오가는 선박뿐 아니라 순례자들의 길을 밝혀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외관도 수도원처럼 생겼대요. 바닷길의 안전과 함께 종교적 헌신을 의미하게 되면서 '신의 불빛'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18세기에 들어 등대는 기술의 진보와 함께 더욱 발전했습니다. 영국 남서부의 에디스톤 등대는 17세기 말 암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등대가 마주하고 있는 바다는 '배들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거친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쳤죠. 이 때문에 등대도 여러 차례 파손됐었어요. 하지만 18세기 중반 시멘트를 이용해 등대를 재건한 뒤엔 자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며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에디스톤 등대는 이후 200년 동안 세계 각지 등대들의 모델이 되었죠.

이 책은 등대를 통해 '해양 문명'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조망합니다. 풍부한 사진과 지도, 도판 자료는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실제 등대 탐사 여행을 떠나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하죠. 등대의 불빛에 담긴 문명의 여정을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이진혁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