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서로 다른 맛 어우러진 탕평채… 정치갈등 풀고자 한 영조 염원 담겼죠

입력 : 2025.04.15 03:30

탕평채

탕평채는 흰색 청포묵, 초록 미나리, 검은 김 등을 주재료로 만들어요. 조선 시대 각 당파를 상징하는 색깔의 재료를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탕평채는 흰색 청포묵, 초록 미나리, 검은 김 등을 주재료로 만들어요. 조선 시대 각 당파를 상징하는 색깔의 재료를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요즘처럼 정치권의 갈등이 극에 달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습니다. 조선 시대의 폐단 중 제일가는 것은 역시 '당파 싸움'입니다. 선비들이 당을 만들고 서로 치열하게 싸워댄 것이지요. 조선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의 다툼으로 본격화된 당파는 시간이 지나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치열해졌습니다. 권력을 잡은 당은 반대 당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아 숙청했고, 이 일로 원한이 생긴 반대 당은 권력을 잡았을 때 똑같이 복수했습니다.

이런 다툼과 복수가 계속되는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 리 없지요. 심지어 임진왜란 같은 나라의 위기 속에서도 동인과 서인은 싸움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오성대감' 이항복이 "저렇게 잘 싸우니, 동인이 동쪽에서, 서인이 서쪽에서 일본군과 싸우면 우리가 이기겠네"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고 전해지지요. 임진왜란은 7년 만에 끝났지만 당파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미움과 원한은 계속 쌓여만 갔거든요. 그렇게 100년이 흐르고, 이런 증오의 고리를 끊으려 한 왕이 있었으니 바로 영조입니다. 그래서 시행한 정책이 탕평책입니다. 중국의 정치 고전 '서경(書經)'에는 "편이 없고 당이 없으면 왕도가 넓고[蕩] 평평할[平] 것이다"라는 뜻의 구절이 있지요. 서로 편 가르지 말고, 당파를 만들지 않으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라는 주장이 탕평책입니다. 영조는 미래의 관리들이 공부하는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우고, 당파별로 번갈아 가며 인물을 등용하는 등 균형을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때 신하들과 함께 나눈 음식이 바로 탕평채였다고 합니다. 탕평채의 주재료는 하얀 청포묵, 고기, 붉은 당근, 검은 김, 초록 미나리 등등입니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어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것처럼, 영조는 노론, 소론, 남인, 소북의 네 당파가 싸움을 그만두고 힘을 합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당파 싸움은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을 이어받았지만 성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탕평채를 몹시 좋아해서 즐겨 먹었습니다. 정조 때의 실학자 유득공은 탕평채를 "시원해서 봄날 밤에 야식으로 먹기 좋은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소화 잘되는 재료로 만들어졌으니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대의 문인 이옥은 자신의 시에서 탕평채와 함께 술을 마시는 풍경을 적었으니 아무래도 사랑받는 술안주가 아니었을까요. 탕평채는 묵과 고기, 김이 들어갔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꽤 고급 요리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영조가 직접 탕평채라는 이름을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이 음식을 보며 갈등을 봉합하고 사회의 통합을 위해 탕평책을 폈던 영조를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태어난 탕평채는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식탁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