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이미지… 강렬한 색 대비는 혁명·저항 상징하죠

입력 : 2025.04.15 03:30

체 게바라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선 '한류 축제'가 열렸습니다. 쿠바와 대한민국 수교 1주년을 기념한 행사였어요. 미국 플로리다 남쪽 카리브해에 있는 쿠바는 재즈와 시가(담배), 올드카(old car)로 유명한 나라인데요. 그런데 의외로, 쿠바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디자인 아이콘과도 연결되어 있답니다. 바로 20세기 중반 혁명가로 활동했던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초상<사진>이에요. 붉은 바탕에 흑백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체 게바라의 얼굴 이미지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초상 중 하나죠.

1928년 아르헨티나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원래 의사였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그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죠. 그는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가난에 신음하는 무수한 노동자와 빈민의 실상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체 게바라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의사 가운을 벗고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동료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며 혁명 지도자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에도 그는 남미의 다른 나라에서 투쟁을 이어나갔죠. 하지만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1967년 정부군에게 잡히며 죽음을 맞습니다. 그의 죽음은 체 게바라를 '저항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인식이 생긴 데엔 그의 초상을 담은 그래픽 아트가 크게 일조했죠. 1960년 쿠바의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는 어느 장례식에 참석한 체 게바라의 모습을 촬영했는데요. 이 흑백 사진은 '게릴라 영웅'의 모습으로 유럽까지 퍼지게 되죠. 그리고 체 게바라를 존경하던 아일랜드 출신 디자이너 짐 피츠패트릭은 1968년 이 사진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웅에게 헌정하는 그래픽 아트를 제작했습니다.

이 디자인의 특징은 복잡한 세부 묘사를 배제했다는 점입니다. 인물의 윤곽을 강조한 흑백 초상에 붉은 배경을 대비시켰죠. 이 강렬한 이미지는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혁명과 저항으로 표현되는 체 게바라의 삶을 떠올리게 해요. 피츠패트릭은 "이 이미지는 억압받는 자들에게 속한다"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덕분에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됐어요. 원본은 물론이고 이를 패러디한 다양한 이미지가 포스터, 티셔츠, 광고물 등에 쓰이면서 체 게바라 열풍이 불었어요.

피츠패트릭의 그래픽 작업은 누구나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나의 강력한 '시각 언어'를 만들어낸 사례로 여겨져요. "정부가 주도하지 않은 가장 성공한 정치 포스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후대 정치인들과 디자이너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사용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포스터 'HOPE' 또한 체 게바라 이미지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