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우주에서 장을 담글 수 있을까… '우주 발효 음식' 만든대요

입력 : 2025.04.15 03:30

우주 발효 식품

/그래픽=진봉기
/그래픽=진봉기
최근 세계적으로 다양한 우주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우주 식량'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어요. 우주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하고, 우주에 새로운 거주지를 건설하려면 무엇보다 음식이 중요하거든요.

얼마 전 국제 공동 연구진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미소 된장을 발효시키는 데 성공해 큰 화제가 됐어요. 오늘은 발효의 원리와 왜 우주에서 발효식품을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해 알아볼게요.

우주에서 발효 음식이 필요한 이유

우주인들은 보통 수분을 뺀 동결건조 식품이나, 통조림처럼 장기 보관이 가능한 음식을 주로 먹어요. 물이 많은 음식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데다가 부패 위험도 크기 때문이랍니다. 우주 식량엔 물론 충분한 영양분이 들어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지구에서 먹는 신선한 음식에 비해 맛이 없고, 쉽게 질린다는 것이죠.

우주 식량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우주인의 건강과 임무 성공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예요. 우주에 가면 식욕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주에선 몸속 체액이 머리 쪽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지구에선 중력이 있어 혈액과 체액이 다리 쪽으로 자연스럽게 흐르지만,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선 체액이 상체와 머리 쪽으로 몰리게 돼요. 그 결과 얼굴이 부풀고 코가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죠. 또한 우주에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먹기 어렵기 때문에 면역력과 장 건강이 나빠질 수 있지요. 실제로 건강 유지에 어려움을 겪은 우주인도 많았답니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우주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방법을 연구해왔습니다. 김치, 피클, 치즈,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은 특유의 감칠맛으로 우주인들의 입맛을 돋울 수 있지요. 게다가 몸에 좋은 미생물이 많아 소화와 면역력 유지에도 도움을 줍니다.

미생물이 사람에게 유익한 성분 만들죠

본격적인 연구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발효가 무엇인지 알아볼게요. 발효는 미생물이 유기물(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분해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에요.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유익한 성분이 나오기도 하죠. 쉽게 말해, 곰팡이·효모·세균 같은 미생물이 당분이나 전분 같은 물질을 분해하면서 음식의 맛과 향, 영양 성분을 바꾸는 거예요.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많지만, 효모와 젖산균, 초산균, 그리고 곰팡이가 가장 잘 알려져 있어요.

먼저 효모는 당분을 먹고 발효시켜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이에요. 포도주·맥주 같은 술이나 빵은 바로 이 효모의 알코올 발효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젖산균은 당류를 분해해 젖산을 만들어내요. 젖산은 음식 맛과 영양을 높이고 부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죠. 김치·치즈·요구르트 등은 모두 젖산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음식이에요. 초산균은 알코올을 산화시켜 초산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이에요. 식초가 대표적인 초산 발효 식품입니다. 곰팡이는 음식 속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곰팡이 발효를 통해 간장과 고추장 같은 전통 장류를 만들죠.

된장은 곰팡이와 효모, 여러 세균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 발효의 산물이에요. 메주를 볏짚에 묶어 통풍이 잘되는 곳에 걸어 두면, 곰팡이와 세균이 자라며 발효가 시작돼요. 잘 익힌 메주는 소금물에 담가 약 2개월 동안 숙성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콩에는 없던 새로운 성분이 생겨나 된장 특유의 풍미와 영양을 더해주죠.

이번에 연구팀이 만든 발효식품은 일본식 된장인 '미소'예요. 미소는 누룩곰팡이의 일종인 황국균을 이용해 만들며, 우리 된장보다 발효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입니다.

달에서도 음식 발효 실험 예정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덴마크 국립기술대 공동 연구진은 우주에서도 식품 발효가 가능한지 알아보려는 실험을 진행했어요.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선 미생물의 성장 속도나 활동 방식이 지구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발효가 가능하다면 지구에서 발효된 음식과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아보려고 했죠.

연구팀은 먼저 온도, 습도, 압력, 방사선 등 발효 환경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감지 장치'를 개발했어요. 그리고 쌀, 보리, 콩 등을 섞어 만든 혼합물을 장치에 넣어 30일 동안 우주에서 발효시켰어요.

지구로 돌아온 미소는 정상적으로 발효된 것으로 확인됐어요. 같은 재료를 이용해 지구에서 발효시킨 미소보다 더 진한 향이 났고, 맛은 더 고소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우주의 미세 중력과 방사선이 미생물의 성장과 대사 작용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어요. 실제로 일부 미생물은 지구에서 만든 미소보다 100배 이상 많이 늘어났고, 미소 발효 환경의 방사선 수치도 지구보다 수십 배나 높았다고 해요. 하지만 사람이 먹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연구는 미생물이 우주에서도 활동할 수 있고, 음식 발효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어요. 오히려 일부 미생물은 우주에서 더 활발하게 증식한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다만, 우주 환경이 미생물의 성장과 대사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요.

과학자들은 달에서도 된장과 김치, 치즈, 빵 같은 발효 식품을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수준인데요. 또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발효 음식은 어떤 맛일지 기대됩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