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까치·호랑이 그림… 백성 목소리 들어달라는 소망 담았대요
입력 : 2025.04.14 03:30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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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1 - 19세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봉황도'. 종이에 채색. 정치적 안정을 의미하는 봉황은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길상(吉祥) 소재 중 하나입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민화는 다채로운 색과 풍부한 흥취가 매력입니다. 방에서 내다본 정원에 꽃이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있는 그림, 물속을 상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물고기 그림, 서가의 책 그림 등 소재도 다양해요. 이런 그림에는 복을 기원하는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상서(祥瑞)로운 그림, 또는 길상(吉祥)이라고 합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선 6월 29일까지 '조선민화전'이 열리고 있어요. 몇몇 전시 작품을 함께 보면서 그림에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는지 살펴볼까요.
정치적 안정·번영 기대 담아
〈작품 1〉의 새를 보세요. 여러 가지 새의 모습이 혼합된 것처럼 보이는 동물이 있습니다. 머리엔 닭처럼 빨간 벼슬이 붙어 있고, 꼬리엔 공작의 깃털이 달려 있어요. 새의 눈은 보통 동그랗고 눈의 흰자위가 겉으로 안 보이는데, 이 새는 마치 사람처럼 옆으로 눈이 길쭉하고 까만 눈동자까지 있습니다. 이 새가 바로 봉황이지요. 붉은 해를 배경으로 나무 아래에서 봉황 가족이 소풍을 나온 듯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상상 속의 새인 봉황은 평소에는 볼 수 없고, 나라가 안팎으로 편안한 시절일 때만 보인다고 합니다. 즉 통치자인 왕의 덕이 높아 전쟁도 없고, 정치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누리는 곳에만 머문다는 것이지요. 민화에는 당시 서민들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봉황을 늘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희망을 담은 그림으로 보입니다.
〈작품 2〉에는 까치와 호랑이가 나와요. 소나무 위에서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까치 두 마리와 그들을 향해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호랑이가 보입니다. 까치는 호랑이가 가까이 있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호랑이는 이에 화가 난 듯 까치를 쳐다보며 으르렁대고 있죠. 어쩐지 강자와 약자가 바뀐 느낌도 납니다.
옛사람들이 그림에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동물은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강력한 힘과 위엄을 상징했고, 까치는 경사나 기쁜 소식을 뜻하는 동물로 여겼죠. 이 작품엔 무서운 맹수 호랑이가 나쁜 일을 막아주고, 까치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과거엔 어린아이의 치아가 빠지면, 까치에게 새 이를 달라고 빌며 지붕 위로 던지곤 했어요. 까치는 낡고 헌것을 물고 가는 대신 새롭고 좋은 것을 가지고 오는 길조(吉鳥)라고 믿었으니까요.
다른 이유도 있답니다. 까치와 호랑이를 인간 사회에 빗댄 것인데요. 통치자(호랑이)가 자기 힘만 자랑하지 말고 백성(까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죠.
성공·장수·행복 추구한 민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젊어서는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고, 늙어서는 아무 걱정 없이 자연을 벗 삼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여깁니다. 〈작품 3〉은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으로, 출세를 의미합니다. 잉어는 눈을 부릅뜨고 힘차게 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습니다. 주변의 물결은 소용돌이가 이는 듯 격렬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잉어는 하늘의 해를 바라보며, 험난한 물살을 이겨내고 있지요.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튀어 오르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옛 중국의 '등용문(登龍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거센 폭포의 물살을 이겨낸 잉어만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는 내용이지요. 잉어가 폭포를 버티려면, 끊임없는 도전과 고통스러운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용이 되려는 잉어 민화는 조선 시대 과거 급제를 통해 관직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이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고 해요. 19세기에 지은 가사 '한양가'에는 "광통교에서 어변성룡도(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가 인기리에 팔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는 다리로, 그림을 파는 상점이 많았던 곳이지요.
〈작품 4〉를 보세요. 기이한 모양의 돌이 글자 형태를 이루고 있어요. 생김새가 복잡해 읽기 어렵지만,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수복(壽福·장수와 행복)'이라고 적혀 있지요. 그 주위로 아이들이 여럿 모여 있는데, 자식이 많고 살림이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글자에서 이어져 나온 나무 두 그루 아래에서 노닐고 있는데요. '수' 자 위로 자라난 나무는 복숭아나무예요. 이는 중국 도교 신화에서 비롯된 상징으로 보입니다. 여신들의 어머니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엔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는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이 복숭아를 먹은 사람은 장수한다는 전설이에요. 예로부터 복숭아는 장수와 신선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복' 자 위로 자라는 나무는 열매가 부처의 손가락을 닮았다 해서 '불수감(佛手柑)'이라 부르는 나무예요. 4~5월에 꽃이 피고 여름에 초록색 열매가 생기는데, 겨울이면 완전히 익으며 진한 황금색이 되죠. 무언가를 감싸 쥐는 듯한 모양 때문에 불수감은 재산을 손에 쥔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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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2 -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호작도'(19세기 추정). 종이에 채색. 조선 후기 널리 그린 대표적 민화로, 나쁜 기운은 물러가고 좋은 일이 오길 바라는 백성들의 소망을 담았어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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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3 - 물에서 잉어가 튀어 올라 용이 되는 장면을 담은 '어변성룡도'(19세기 추정). 출세와 성공을 염원하며 그렸죠.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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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4 - '백동문자도 8폭 병풍'의 일부(19세기 추정). 종이에 채색. 글자에 상징적인 그림 요소를 넣은 민화로, 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아모레퍼시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