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철학·인문학 이야기] 인공지능도 '고차원적 사고'하는 시대… 인간의 특별함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입력 : 2025.04.08 03:30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원작 표지. 인코그니토(Incognito)는 '익명의' '신분을 숨긴'이라는 뜻이지요. /교보문고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원작 표지. 인코그니토(Incognito)는 '익명의' '신분을 숨긴'이라는 뜻이지요. /교보문고
"지네는 행복했어요. 개구리가 재미로 '다리를 움직이는 순서를 말해줄래?'라고 묻기 전까지는요. 그때부터 지네의 다리는 꼬이기 시작했죠."

뇌 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의 책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원제 Incognito)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생각이 끼어들면 잘되던 동작도 망가지는 법이죠. 그렇다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심이나 생각이 아니라, 몸에 깊게 밴 습관일지도 모릅니다.

의식은 기업의 CEO(최고 경영자)와도 같습니다. 회사가 잘 돌아갈 때는 CEO가 자잘한 업무까지 관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CEO가 직접 나서게 됩니다. 의식도 마찬가지예요.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몸에 밴 습성대로 해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의식을 동원해 집중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에요. 장기들의 움직임은 생존에 너무도 중요하지요. 그래서 의식이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혀 있어요. 우리가 생각만으로 심장을 느리게 뛰게 하고 위장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글먼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육체의 활동,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무의식이라고 단언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매우 예민합니다.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조금만 들어가도 기분이 요동치죠.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정신'은 대체 무엇일까요? 결국은 육체와 물질의 변화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요. 이런 시각을 환원주의라고 부릅니다. AI(인공지능)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거의 따라잡은 지금, 환원주의는 매우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인간 정신을 물리적·화학적으로 구현 가능하다면 인간의 특별함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인간의 DNA 정보를 해독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이미 완성된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요. 1950년대 초, 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는 '과학적 철학'을 외쳤습니다. 과학이 세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였지요.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수많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글먼은 여기에 '라디오 가설'을 펼칩니다. 문명을 모르는 사막의 원주민들에게 하늘에서 라디오가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원주민들은 작은 상자에서 사람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에 신기해하며, 내부 회로를 분석해 소리가 나오는 원리를 찾아내려고 애쓰지요. 하지만 원주민들은 라디오의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오는 전파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이글먼은 의식을 다루는 우리의 연구 수준도 이 정도일지 모른다고 조심스러워합니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은 어떤 점에서 특별하고 존엄한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글먼과 함께 깊은 사색에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