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산 이야기] 폐허가 된 산림 복원하는 '칡'… 토양 완전 회복엔 100년 걸려요

입력 : 2025.04.07 03:30 | 수정 : 2025.04.07 03:40

산불

지난달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상공에서 촬영한 잿더미가 된 산림의 모습. /장련성 기자
지난달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상공에서 촬영한 잿더미가 된 산림의 모습. /장련성 기자
최근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수만 명의 이재민이 생겨났어요. 피해를 입은 모든 분께 위로를 전합니다. 산불 피해가 복구되면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산과 산에 사는 동식물들은 어떻게 될까요? 산도 사람처럼 생명을 다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산은 죽지 않습니다. 6·25전쟁 시기 많은 산이 포화에 휩싸이며 깎여나갔지만, 산은 초록의 숲으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어떤 식물들에는 산불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산의 흙 속 깊은 곳에는 숱하게 많은 씨앗들이 마치 잠든 듯 오랜 시간 머물러 있습니다. 키 큰 나무들이 쓰러지고 없어져 햇볕과 바람이 땅에 닿을 때까지 몇 개월, 몇 년, 수십 년을 기다리기도 해요. 산불은 이 씨앗들에 잠을 깨우는 '알람'과도 같습니다. 산불로 인한 뜨거운 열과, 인근 식물이 없어지며 들어오는 햇빛이 씨앗의 발아를 유도하는 것이죠.

산불이 나고 약 50일이 지나면 이런 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잎을 펼친답니다. 그동안 높고 빽빽한 나무들 아래, 햇볕이 닿지 않았던 땅의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해요. 이 과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식물이 있답니다. 바로 '칡'이에요. 칡은 산불이 나면 폐허가 된 땅을 복원하는 역할을 해요. 칡은 가장 먼저 숲에 돌아와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땅에 고정시켜 흙을 비옥하게 만들지요.

이후 키 큰 나무들이 새 숲을 일궈요. 소나무, 오리나무, 벚나무, 팥배나무 같은 많은 햇빛을 필요로 하는 나무들이 먼저 자라나지요. 이 나무들이 아늑한 새 보금자리를 만들면, 그 뒤를 이어 햇빛이 부족해도 비교적 잘 자라는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나타난답니다.

인위적으로 특정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기도 한답니다. 지자체와 산림청이 산불 피해 지역의 지형과 토양 상태를 토대로 인공림 조성을 검토하지요.

그렇다고 산불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순 없어요. 사람은 피부에 살짝 화상을 입어도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지만, 나무는 불에 껍질이 살짝만 타더라도 치명적인 상태일 가능성이 높아요. 껍질 안쪽에 있는 양분과 물을 전달하는 통로가 손상됐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에요.

나무 한 그루에는 100종이 넘는 생명체가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산불로 나무들이 사라지면 수천, 수만의 생명체 또한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불은 자연의 순환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런 순환은 결코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지 않아요.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한 번 나면 개미가 돌아오는 데 13년, 새는 19년, 야생동물은 35년이 걸리고, 토양이 완전 회복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고 해요. 불이 나면 토양의 양분까지도 함께 소실되기 때문입니다.


신준범 월간 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