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수십 년간 이어진 물 분쟁… 강물 두고 상·하류 국가 간 싸웠죠

입력 : 2025.04.02 03:30 | 수정 : 2025.04.02 03:33

세계 물 분쟁

물 분쟁이 일어난 주요 지역을 표시한 지도.
물 분쟁이 일어난 주요 지역을 표시한 지도.
지난달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었어요. 인류의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주변 강이나 바다가 오염돼 먹을 수 있는 물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요. 이에 '유엔(UN)'은 물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취지로 이 같은 날을 제정했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용하고 있지만, 과거부터 많은 국가들은 물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답니다. '경쟁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라이벌(rival)'은 '강'을 뜻하는 라틴어 '리부스(rivus)'에서 유래했지요. 하나의 하천이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는 지역에선 물을 두고 갈등이 존재했고 일부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물을 두고 벌어진 역사적 갈등을 알아보겠습니다.

건조한 중동 지역에서 분쟁 많죠

세계에서 물 분쟁이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는 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는 중동 지역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등이 접해 있는 '요르단강'에서 큰 분쟁이 벌어졌지요. 물 부족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국가들의 정치 대립까지 더해졌거든요.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건국(1948년) 전부터 종교적·정치적으로 대립해 왔어요.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은 아랍 국가들과의 충돌로 시작된 전쟁이 네 차례에 걸쳐 발발한 '중동 전쟁'이에요. 그중에서도 1967년 발생한 '제3차 중동 전쟁'은 요르단강을 둘러싼 갈등이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죠.

요르단강은 시리아와 레바논의 국경 지대에서 발원해 이스라엘 서쪽의 사해(死海)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에요. 이스라엘이 건국될 당시만 하더라도 요르단강 유역의 주민들은 요르단강에서 안정적으로 물을 얻을 수 있었죠.

그러나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스라엘이 건조한 땅들을 경작 가능한 농지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요르단강에서 많은 양의 물을 끌어왔고, 이것이 물 부족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점차 더 많은 양의 물을 사용했는데요. 이에 대응해 시리아는 1960년대에 요르단강 상류의 흐름을 바꿔 이스라엘로 흘러가는 물을 줄이려는 프로젝트를 벌입니다. 나아가 시리아는 팔레스타인의 반(反)이스라엘 무장 단체들을 지원하고, 이집트와 군사동맹을 맺으며 반이스라엘 노선을 더욱 강화했어요.

정치·군사적 대립이 이어지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관계에서 요르단강 문제는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이스라엘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집트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단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전쟁 후 이스라엘은 요르단강의 발원지와 맞닿아 있는 골란고원을 점령하며 더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요르단강 서안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사용할 수 있는 물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정치 갈등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죠.

상·하류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져

중동 지역을 흐르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을 두고서도 오랜 기간 갈등이 이어져 왔습니다. 두 강은 모두 튀르키예 지역에서 발원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친 뒤 페르시아만으로 흐르죠. 이 3국 사이엔 두 강을 두고 수십 년 동안 갈등이 이어지고 있어요.

갈등은 1970년대 중반에 본격화됐어요. 시리아가 유프라테스강 인근 저수지에 물을 채우기 위해 댐을 닫은 거예요. 이로 인해 유프라테스강 하류 이라크로 흘러가는 유량이 급감했고, 이라크는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라크는 시리아에 댐 문을 열라고 했지만, 시리아가 이를 거부하자 국경 지대에 군대를 배치하며 군사적 압박을 하기에 이릅니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시리아가 일정 수준 이상 물을 흘려보내기로 합의한 뒤에야 전쟁의 불씨가 꺼질 수 있었죠.

1980년대에는 튀르키예가 시리아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자원을 통제하기 시작했어요. 여러 개의 댐을 짓고, 저수지를 채우기 위해 유프라테스강의 흐름을 일정 기간 차단한 거예요. 이 때문에 하류 지역의 시리아와 이라크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공급에 큰 타격을 받게 됐어요.

시리아는 튀르키예에 불만을 품고 쿠르드족 반란 세력과 비밀 협약을 맺어 원조를 제공했어요.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에서 차별받아 온 소수 민족인데, 일부 쿠르드족은 독립을 요구하며 튀르키예 정부와 갈등 관계에 있었거든요.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도 튀르키예의 정책을 두고 복수를 하겠다며 위협하기도 했어요.

국제사회의 중재와 외교 협상이 맺어지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3국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물 분쟁 계속돼

인도도 물을 놓고 방글라데시와 갈등을 겪어 왔어요. 인도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데다 주변에 강은 많지만 환경 오염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물이 많지 않아 물이 부족하답니다.

인도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은 인도 북동부를 지나 벵골만 하류에 있는 방글라데시로 흘러가요. 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에는 갠지스강을 이용하기 어려워요. 따라서 인도는 1970년대 방글라데시 국경 근처에 댐을 건설해 건기엔 강물을 가두었고 우기엔 댐을 열어 물을 방류했어요. 이 때문에 방글라데시의 가뭄과 홍수가 심해졌습니다.

방글라데시의 항의가 이어져 양국은 1977년 갠지스강 이용에 관한 협정을 맺었어요. 건기에도 충분한 물이 방글라데시로 흐르도록 보장하는 내용이었지만, 아직도 방글라데시 주민들은 수량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어 완전히 분쟁이 끝나지는 않은 상태죠.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선 물을 둘러싼 분쟁의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은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사용하기 위해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하류에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댐 때문에 물이 부족해질까 봐 경계하고 있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에 진입하고 있어요. 요르단강을 둘러싼 갈등이 전쟁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에 진입하고 있어요. 요르단강을 둘러싼 갈등이 전쟁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1990년 완공한 튀르키예의 아타튀르크댐. 이 댐을 포함해 튀르키예가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지은 여러 댐 때문에 하류 지역인 시리아와 이라크는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어요.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1990년 완공한 튀르키예의 아타튀르크댐. 이 댐을 포함해 튀르키예가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지은 여러 댐 때문에 하류 지역인 시리아와 이라크는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어요.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인도 바라나시 지역에서 촬영한 갠지스강. 갠지스강은 많은 사람에게 생활 용수를 공급하지요.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인도 바라나시 지역에서 촬영한 갠지스강. 갠지스강은 많은 사람에게 생활 용수를 공급하지요.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