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고사성어] 항우 포위한 뒤 초나라 노래 부른 유방…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전쟁 의지 꺾었죠

입력 : 2025.04.01 03:30

사면초가

/일러스트=김성규
/일러스트=김성규
답보 상태를 보이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입으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및 종전 조건을 양측에 제시했는데, 여기엔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선택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더 이상 피할 곳 없는 젤렌스키의 현 상황을 고사성어로는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면(四面), 즉 사방에서 초나라[楚]의 노래[歌]가 들린다는 뜻이지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것을 표현합니다. 이 고사성어는 약 2200년 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유래했답니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초나라 출신인 항우(項羽)가 유방(劉邦)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쟁 초반에는 항우가 우세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방은 점점 세력을 키웠고 반대로 항우의 군대는 병사들이 이탈하고 기강이 느슨해졌죠.

유방은 항우 군대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어요. 적군의 진지를 사방으로 포위한 후에 항우와 그의 병사들에게 익숙한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노래 좀 부른다고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겠지만 이 전략은 유효했어요.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항우의 군사들은 밤에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향의 노랫소리에 깜짝 놀랐고 이내 가슴이 먹먹해졌지요. 부모님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용솟음쳤고 전쟁터에서 생사를 오가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어요.

유방의 '사면초가 작전'은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적군의 전투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습니다. 결국 전쟁은 항우의 패배로 끝났고, 승자인 유방은 한(漢)나라를 세웁니다. 이 전쟁을 초한(楚漢) 전쟁이라고 하는데, 진(秦)나라 멸망 이후 중국의 패권을 두고 항우와 유방이 벌인 전쟁을 뜻하죠.

사면초가와 비슷한 표현으로 백척간두(百尺竿頭)와 풍전등화(風前燈火)가 있어요. 백척간두는 백 척(百尺)이나 되는 긴 길이의 장대(竿) 끝(頭)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척'은 길이를 재는 고대의 단위인데, 일 척(一尺)은 현재의 약 30cm에 해당해요. 아찔하게 높은 백 척 장대의 끝에 서 있다면 까딱 잘못하면 수직 낙하하게 되죠. 즉 매우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풍전등화는 바람(風) 앞(前)의 등불(燈火)이라는 뜻으로, 역시 위태로운 상황을 말해요.

전국(戰國)시대 사상가인 묵자(墨子)는 '전쟁은 이겨도 손해이고 져도 손해이므로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묵자의 말대로 전쟁 없는 시대가 오기를 바랍니다.

채미현 박사·연세대 중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