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화려한 장식 대신 노출 콘크리트 마감… 빨리 지을 수 있어 전쟁 이후 인기였죠
입력 : 2025.03.25 03:30
브루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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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공을 앞두고 있는 서울 성수동 '젠틀몬스터' 사옥. /KCC
브루탈리즘이란 단어는 어원적으로 프랑스어 베통 브뤼(béton brut)에서 비롯됐어요. 베통은 '콘크리트', 브뤼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라는 뜻으로, 거친 질감의 노출 콘크리트를 의미해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건물 겉면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는 방식에 붙인 표현이죠. 이런 건축 스타일을 두고 영어권에선 '거칠다'라는 뜻의 단어 'brutal(브루탈)'을 붙여 브루탈리즘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은 공공시설, 교육기관, 주거 단지 등을 빠르게 재건해야 했어요. 따라서 화려한 장식보다는 실용성이 중시됐어요. 기능과 구조를 우선시하며 외벽도 콘크리트로 마감하는 브루탈리즘은 저렴한 데다 빠르게 건물을 지을 수 있어서 당시 상황에 딱 맞았죠. 심지어 소련조차도 '만민에게 평등한 건축물을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이 양식을 적극 수용했어요. 브루탈리즘은 바다 건너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심지어는 일본까지 퍼져나갑니다.
초기 브루탈리즘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었어요. 하지만 세계로 퍼진 뒤 이내 각 지역 특성과 맞물리며 독특한 건축 스타일로 진화합니다. 건축 기술이 발전하며 노출 콘크리트로 지을 수 있는 건물 구조와 크기가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브루탈리즘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지어진 공공기관, 도서관, 대학 건물 등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면서 마치 콘크리트 조각품처럼 도시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죠. 미국의 보스턴 시청, 가이젤 도서관, 영국의 바비칸 센터, 트렐릭 타워, 일본의 국립 요요기 경기장 등 독특한 구조와 형태를 갖춘 건축물들이 들어섰어요.
하지만 브루탈리즘 건축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완공 이후 시간이 지나자 노출 콘크리트에 금이 가고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유지와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했던 것이죠. 1980년대엔 정부 지출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면서 브루탈리즘 건물 수요도 줄어들었어요. 제대로 보수를 하지 않아 우울하고 삭막하게 변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도시의 흉물로 변해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어요.
하지만 최근엔 화려한 건물 일변도의 풍경에 싫증 난 젊은 세대가 브루탈리즘에 다시 관심을 보이면서 '네오브루탈리즘' 양식이 조명을 받고 있어요. 국내에선 서울 성수동에 지어지고 있는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 사옥이 네오브루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