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대중' 뜻하는 라틴어서 유래… 남미 대륙서 흔히 나타났죠

입력 : 2025.03.19 03:30

포퓰리즘

①고대 로마 정치가인 그라쿠스 형제의 모습을 상상해 19세기에 만든 조각상. 이들이 추진한 토지 재분배 정책 등을 포퓰리즘의 시초로 보기도 해요. ②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후안 페론(가운데)과 애칭 '에비타'로 불린 그의 부인 에바(오른쪽)가 1952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에 나선 모습. ③1937년 열차 문 앞에 모인 시민들과 마주한 라사로 카르데나스 전 멕시코 대통령. 그는 철도와 석유 등 주요 인프라 산업을 국유화했어요. ④포퓰리즘 정치를 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18년 수도 마닐라의 경찰 본부에서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들어 보이고 있어요. /위키피디아·브리태니커·AP 연합뉴스
①고대 로마 정치가인 그라쿠스 형제의 모습을 상상해 19세기에 만든 조각상. 이들이 추진한 토지 재분배 정책 등을 포퓰리즘의 시초로 보기도 해요. ②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후안 페론(가운데)과 애칭 '에비타'로 불린 그의 부인 에바(오른쪽)가 1952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에 나선 모습. ③1937년 열차 문 앞에 모인 시민들과 마주한 라사로 카르데나스 전 멕시코 대통령. 그는 철도와 석유 등 주요 인프라 산업을 국유화했어요. ④포퓰리즘 정치를 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18년 수도 마닐라의 경찰 본부에서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들어 보이고 있어요. /위키피디아·브리태니커·AP 연합뉴스
최근 태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16~ 20세 국민 270만명에게 1인당 약 43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태국 내부에선 국가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돈이 풀리면서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태국 정부의 결정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노년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경기 부양엔 큰 효과가 없었거든요.

'포퓰리즘'은 대중의 요구를 반영해 이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포퓰리즘 정치는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났었는데요. 오늘은 포퓰리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어떤 정책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세기 미국·러시아에서 등장

포퓰리즘의 기원은 로마 시대 정치가인 그라쿠스 형제가 추진했던 토지 재분배 정책과 곡물 정책이라는 설도 있어요. 근대적인 의미로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 운동은 19세기 미국과 러시아에서 등장했는데요. 이후엔 남아메리카 국가들에서 흔히 나타났죠.

포퓰리즘이라는 말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인민당(People's Party)'이 등장한 이후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빠르게 산업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농업 발전은 지지부진했어요. 게다가 기계화 등으로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는데, 운송비 등 각종 비용은 상승하며 농부들은 경제적으로 점차 어려워졌죠.

그러나 기성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은 농민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어요. 그래서 1890년대 농민과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인민당을 창설했습니다. 이들은 농민과 노동자 계층의 경제적 지위를 보장하는 다양한 개혁을 요구했답니다. 여기엔 8시간 노동제와 철도 국유화 등이 포함되어 있었죠. 그들이 제안한 많은 정책들이 훗날 미국 사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20세기 미국의 경제 대공황 이후엔 노동자 계층을 보호하는 여러 정책들이 시행됐죠. 미국에서의 대중 운동은 정치 엘리트와 일반 대중 사이 갈등에서 대중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 운동의 원형을 보여줬어요.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선 농민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나로드니키(Narodniki)' 운동이 일어나요. 당시 러시아는 산업 발전이 더뎌 여전히 농업 중심 사회였어요. 그런데도 많은 농민들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죠. 이에 일부 지식인과 대학생들은 직접 농촌으로 찾아가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계몽운동을 펼쳤죠. 이들은 농민을 교육해 산업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 운동은 결국 실패했지만, 대중 중심의 정치 운동으로서 포퓰리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답니다. 엘리트와 대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대중 편에 선 것이지요.

남아메리카에서 자주 나타난 포퓰리즘

포퓰리즘이란 개념은 서구 사회에서 만들어졌지만 20세기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얽혀 있어요. 남아메리카 대륙은 오랜 기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독립 이후에도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정치 권력을 독점했죠. 또 당시 남미 국가들은 산업화 속도가 더뎌 원자재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원자재 가격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가격 변동에 취약했는데, 이 때문에 서구 선진국 위주로 돌아가는 세계 경제 구조에 대한 불만이 높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미의 정치인들은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포퓰리즘 정치를 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멕시코 전 대통령 라사로 카르데나스(재임 1934~1940년)예요. 그는 자국민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복지를 늘리는 사회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대규모 토지 개혁을 통해 농민 공동체에 땅을 나눠주고, 석유 회사들을 국유화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어요. 노동조합 권리를 강화하고 농촌 곳곳에 학교도 세웠죠.

그는 빈곤층과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받았지만 기업가들의 강한 반발도 샀습니다. 급진적 정책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져 민간 투자가 위축되기도 했지요.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대통령은 1946~ 1955년과 1973~1974년 두 차례 집권했어요. 그는 '페론주의(Peronism)'라고 불리는 포퓰리즘 정책을 폈어요. 노동 계급과 도시 빈민층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 삼아 국가 주도 산업화와 사회복지 확대를 했던 것입니다. 페론은 노동자 임금도 올려 노동 계급의 지지를 얻었어요. 또 철도와 가스, 통신 등 주요 인프라 산업을 국유화하고 외국 기업이 자국 경제에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제한했죠.

그러나 정부 지출을 너무 늘리다 보니 재정 적자가 쌓이고, 인플레이션이 심화했죠. 단기적으론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으론 경제 구조가 악화되는 결과가 나타났어요. 반대파를 억압하며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오지요.

'마약과의 전쟁' 이용한 두테르테

포퓰리즘 정치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에 호소해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입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제16대 필리핀 대통령(재임 2016~2022년)은 직설적이고 과감한 언어로 대중의 불만을 자극하는 방식을 활용했죠.

그의 메시지는 강한 법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것과 부패한 기득권층을 처벌하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특히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 범죄자들에 대한 초법적 처형을 주장했죠.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마약 범죄에 지친 많은 필리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답니다.

그의 포퓰리즘은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언론 등 자신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탄압하고 사법부 결정에도 개입하려고 했죠.

결국 그는 마약 단속 과정에서 초법적인 살상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얼마 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압송돼 수감됐어요. 그는 마약 복용자나 판매자가 즉시 투항하지 않으면 현장 경찰이 총을 쏠 수 있게 했는데, 이로 인해 최대 3만명이 죽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포퓰리즘(Populism)

'대중' '인민'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했어요. 기득권층에 대항해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사상을 말합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