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대지주가 된 농부는 왜 땅에 집착했나… 삶의 뿌리이자 자존감이었기 때문이죠

입력 : 2025.03.11 03:30

대지

소설 '대지'의 초판본. /위키피디아
소설 '대지'의 초판본. /위키피디아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미국인 소설가 펄 벅(1892~1973)의 대표작인 '대지'의 원제는 'The Good Earth'예요. 이를 보면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이 작품은 중국이 배경인데요. 펄 벅은 태어나자마자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중국 양쯔강 연안 소도시에서 자랐어요. 중국 농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그는 소설에서 중국인 등장인물들을 통해 '땅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답니다.

주인공 왕룽에게 땅은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왕룽은 농사꾼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그도 농사를 지었지요. 왕룽의 삶에서 땅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땅에서 자신의 삶을 일군 인물입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왕룽은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부자인 황씨댁의 여종 오란을 아내로 맞았어요. 오란은 예쁘지는 않았지만 알뜰하고 강직했죠. 둘은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얻은 재산으로 토지를 사들이며 차근차근 재산을 불려나갑니다. 여기에 뜻밖의 횡재까지 겹치며 왕룽은 큰 땅을 가진 부자가 되지요.

하지만 지주가 된 왕릉은 농사일에서 점점 멀어졌어요.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직접 땅에서 땀을 흘리는 시간보다 일꾼을 관리하는 시간이 많아지죠.

아내 오란이 죽고 난 뒤 왕룽의 삶도 크게 달라져요. 결정적인 계기는 아들들과의 불화였습니다. 성년이 된 아들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고, 땅의 소중함도 느끼지 못해요. 그들에게 땅은 단순한 재산에 불과했지요. 그래서 왕룽이 죽으면 땅을 팔아버리고 돈을 나누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왕룽은 크게 분노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너희들도 땅만 가지고 있으면 살 수 있다"고요. 왕룽에게 땅은 그의 삶 그 자체였으니, 당연히 아들들도 자신의 땅을 일구며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왕룽은 땅에 집착하며 점차 고립됩니다.

왕룽은 자신의 늙음과 무기력함이 서글퍼집니다. 결국 그는 막내 아들과 나이가 비슷한 여종 리화와 시골 흙집으로 가서 지내게 되지요.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그곳까지 찾아와서 땅을 팔아 돈을 나눠 갖자는 말을 꺼냈고, 왕룽은 그 소리를 듣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까요. 왕룽의 삶은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에게 토지는 자신의 뿌리이자 자존감을 의미했지요. 아무리 잘난 인간조차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토대에서 벗어나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을 왕룽의 삶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당연하게만 여겼던 땅과 자연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배혜림 창원 창북중 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