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대공황에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보편적 연민·감동 담았죠
입력 : 2025.03.10 03:30
아서 밀러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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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국내 공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 역할을 맡은 배우 박근형(왼쪽)씨와 아내 린다 역의 예수정씨. 극중 부부는 별다른 직업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큰아들 비프의 미래를 두고도 고민합니다. /쇼앤텔플레이·T2N미디어
미국적 소재로 보편적 공감을
'세일즈맨의 죽음'은 35년을 세일즈맨으로 산 윌리 로먼이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극은 다음 날 밤 윌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막을 내리기까지 하루 동안의 사건을 담고 있지요. 주인공 윌리를 둘러싼 가족들의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며 사건이 중첩되다 보니 하룻밤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워요. 그만큼 아서 밀러는 탄탄한 구성으로 매우 치밀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관객들을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밀어 넣지요.
아서 밀러는 '가장 미국적인 소재로 가장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작품'을 썼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시대와 개인의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한 작가였습니다.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의 배경, 그리고 1929년 세계를 덮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겪게 된 가족의 불행은 그의 작품 전반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죠.
뉴욕 할렘 지역에서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밀러 역시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처럼 성공과 몰락을 겪게 되는 자신의 아버지를 지켜보며 성장해요.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은 적 없지만 400명이 넘는 직원을 둘 정도로 큰 의류 공장을 키웠던 아버지. 하지만 경제 공황은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파산으로 몰아넣고, 밀러 가족의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이 밖에도 '세일즈맨의 죽음'에는 아서 밀러의 개인적인 경험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작품 발표 2년 전인 1947년 어느 날, 한 친척이 아서 밀러를 찾아옵니다. 그는 세일즈맨이었죠. 당시 밀러는 희곡 '모두가 나의 아들'로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촉망받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자신을 찾아온 친척은 자신의 아들도 밀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허풍을 떠는데요. 훗날 이 모습은 윌리가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한 큰아들 비프를 '서부에서 아주 큰 사업을 하고 있어'라고 소개하는 장면에 그대로 담겨 있죠. 밀러는 이런 친척의 모습에서 평생 소시민으로 살았던 세일즈맨의 고단함과 자식에게 거는 기대를 꺾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대공황 이후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줍니다. 35년을 하루같이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삶은 왜 더 나아지기는커녕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요? 밀러는 이 작품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핑크빛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서 비롯된 평범한 가정의 몰락과 죽음은 그래서 깊은 연민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미국 연극사를 바꿔놓은 작가
밀러는 '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독자들에게 그들이 망각하기로 선택한 것을 기억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대공황에 이어 두 번째 시련이 닥칩니다. 바로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 열풍에 휩싸인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게 된 거죠. 노동운동과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았고, 불평등과 부조리를 비판하던 그는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반미 지식인 색출을 위한 청문회에 소환당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미국 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의 선동으로 불이 붙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조사를 받죠. 직업을 잃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된 이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밀러 역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는 동료들의 이름을 대라고 요구받습니다. 이후 다행히 혐의는 벗었지만 오랜 시간 의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하죠. 종교적 마녀사냥을 소재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비판한 '시련'(1953)이 대표적입니다. 연극 '시련'은 마침 오는 4월 9~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추락 이후'(1964) 역시 매카시즘의 파괴성을 고발하는 작품이지요.
밀러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매릴린 먼로와 5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을 하고 이혼하는데요. 밀러와 먼로는 각각 세 번 결혼을 했는데, 먼로의 마지막 결혼 상대가 밀러였습니다. 밀러의 두 번째 아내가 먼로였고요. 훗날 그가 스스로 밝혔듯 공산주의자로 몰리며 겪어야 했던 힘든 시간이 파경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밀러에게 닥친 시대의 격랑으로 두 사람은 서서히 멀어져 갔죠.
밀러의 작품은 미국 연극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세기 초반 미국 연극계는 멜로 드라마와 유럽 연극이 판을 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의 작품들로 인해 고유한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고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는 연극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의 문학사적 업적을 평가할 때 노벨상 수상을 하지 못한 점이 지금도 논란의 불씨가 될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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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년 ‘세일즈맨의 죽음’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윌리 역을 맡은 리 J. 콥(왼쪽)과 린다 역의 밀드레드 던녹. /Arthur Miller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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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배우 매릴린 먼로(왼쪽)와 아서 밀러. 1956년 결혼한 둘은 5년 후 이혼합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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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녀 사냥을 다룬 아서 밀러의 연극 ‘시련’의 2015년 국내 공연 장면. 댄포스 부지사(이순재·맨 오른쪽) 앞에서 소녀 애비게일(정운선·오른쪽 둘째)이 마을에 마녀가 있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