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무슬림은 왜 돼지를 불결하게 여길까… 농사 활용 못 하는 '사치품' 같아서죠

입력 : 2025.03.06 03:30

문화의 수수께끼

[재밌다, 이 책!] 무슬림은 왜 돼지를 불결하게 여길까… 농사 활용 못 하는 '사치품' 같아서죠
마빈 해리스 지음|박종렬 옮김출판사 한길사가격 1만8000원

어릴 적 다리를 떤다고 혼난 경험이 있습니다. '복이 달아난다'는 이유였어요. 다리를 떠는 것과 복이 달아나는 게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지만 더 심한 꾸중을 들을까 봐 묻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문지방을 밟지 말아야 했고, 밥공기에 젓가락을 꽂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이런 암묵적 규율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심지어 어겼을 때 심한 처벌을 받는 곳도 있죠. 오늘 소개할 책은 여기에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문화에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맥락을 짚어내어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을 '인류학'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인류학자로, 문화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에 반응하며 생겨났다고 말해요. 겉보기에 비합리적이거나 황당한 생활 양식도 찬찬히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잘 알려진 대로 힌두교에선 소, 특히 암소를 신성시합니다. 그래서 암소 도살이 금기시되지요. 과거 유럽인들은 힌두교도들이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소를 먹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비합리적인 교리가 사람들을 굶겨 죽인다고 여겼죠.

저자는 먼저 산업화를 이룬 서구 문명과 농경 중심 사회였던 인도를 비교합니다. 인도에서 소는 여전히 토지를 경작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죠. 따라서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소를 보호하는 문화가 이어져 왔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입니다. 그리고 소를 먹었을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손실이 큰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요. 무슬림들이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여기는 것도 비슷합니다. 돼지는 농사에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많은 먹이를 필요로 해요. 일종의 '사치품'인 것이죠. 이런 점 때문에 돼지에 대한 문화적 혐오가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생소한 문화도 등장합니다. 미국 서북부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풍습 '포틀래치'는 광적인 낭비를 벌이는 잔치입니다. 이때 부족 리더는 자신의 귀중한 물건을 남에게 주는데, 경쟁자보다 많은 재산을 남에게 나눠 주는 게 좋은 일로 여겨진대요. 이 희한한 풍습에서도 저자는 의미를 발견합니다. 어획량과 수확량이 고르지 않은 지역 특성 때문에 생산량이 많은 부락에서 형편이 어려운 부락으로 그때그때 자원이 분배될 필요가 있었고, 포틀래치가 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선물'이라고 하면 대가 없이 선의로 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선물이 사회·경제 활동의 중요한 축이 된다는 게 흥미진진합니다.

문화는 공기처럼 익숙해 그 안에 있을 때는 자각하기가 힘듭니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다른 문화를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역설적으로 나의 문화를 돌아보게 합니다. 다름에서 장점을 찾아내는 것은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이진혁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