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K팝과 오케스트라의 만남… 장르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입력 : 2025.02.24 03:30
| 수정 : 2025.02.24 03:54
오케스트라와 대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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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팝 그룹 ‘레드벨벳’의 웬디(가운데)와 서울시향이 협연하는 모습. 서울시향은 올해 SM엔터테인먼트의 히트곡들을 관현악으로 들려줬어요. /SM엔터테인먼트
'다시 만난 세계'는 시상식 음악으로도 친숙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으로 시작해서 웅장함을 더했습니다. '으르렁'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1악장 도입부 선율로 시작한 뒤 행진곡의 팡파르를 연상시키는 후렴구로 변모했지요. 경쾌하고 감각적인 K팝 음악을 풍성한 화음과 색채감이 필수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으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지요. 이처럼 다른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시도를 '크로스오버(crossover)'라고 부릅니다. 과연 크로스오버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록 그룹과 오케스트라의 만남
흔히 오케스트라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같은 클래식 음악만 연주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영화음악이나 가벼운 연주 음악을 일컫는 경음악(輕音樂), 예스러운 정취를 간직한 고전적 팝 음악인 스탠더드 팝까지 대중음악에서도 오케스트라는 빠지지 않지요. 특히 크로스오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대가 1969년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렸던 영국 록 그룹 딥 퍼플과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입니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록 밴드가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협연할 수 있다는 '역발상' 때문에 지금도 록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으로 꼽힙니다. 이들의 실황 음반에는 '그룹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라는 제목이 붙었지요. 딥 퍼플의 키보드 연주자인 존 로드가 작곡한 협주곡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무려 50여 분에 이르는 이 곡은 클래식의 협주곡처럼 3악장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요. 30년 뒤인 1999년에도 딥 퍼플은 같은 장소인 로열 앨버트홀에서 이번엔 런던 심포니와 같은 곡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로열 필하모닉 이후에도 록 그룹과 협연한 오케스트라는 적지 않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1999년 헤비메탈 밴드인 메탈리카(Metallica)와 협연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 공연에는 교향곡(Symphony)과 메탈리카의 머리글자를 따서 'S&M'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메탈리카가 공연을 시작할 때마다 사용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 영화 '석양의 무법자' 주제곡이 울려 퍼지면서 시작한 뒤 메탈리카의 대표곡들을 차례로 들려주었지요. 헤비메탈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메탈리카가 과연 오케스트라와 어울릴 수 있을지 관심과 걱정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클래식과 영화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마이클 케이멘이 편곡과 지휘를 맡아서 호평을 받았지요. 메탈리카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도 20년 뒤인 2019년 'S&M2' 공연을 가졌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역시 지난 2000년 독일 록 그룹 스콜피언스와 협연한 음반 '영광의 순간'을 발매했습니다. 스콜피언스가 1989년 모스크바 록 페스티벌에 참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발표한 '변화의 바람'은 1980~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의 자유화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지요. 베를린 필과 스콜피언스도 음반 출시 이후인 2000년 독일 하노버 세계 박람회에서 협연을 가졌습니다.
영화음악에 이어서 게임 음악까지
영화에서도 오케스트라는 빠지지 않았지요.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같은 러시아 작곡가들은 뛰어난 영화음악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1930~1940년대 나치의 집권과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많은 작곡가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영화음악 분야에서 활동했지요.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영화음악 가운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선율 가운데 하나가 바로 1977년 영화 '스타워즈'입니다.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서'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도입부에서 흐르던 주제곡이 작곡가 존 윌리엄스의 선율이지요. 악의 제국을 이끄는 사령관 다스 베이더가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왔던 '제국의 행진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윌리엄스의 지휘로 이 영화음악을 연주한 악단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입니다. 윌리엄스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하모닉도 직접 지휘해서 '스타워즈' '조스' 'E.T.' '인디애나 존스' '해리 포터' 등 자신의 영화음악들을 들려주었지요.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들은 대중음악의 영역을 넘어서 고전음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1935년 이후 런던 심포니가 참여한 영화음악도 200여 편에 이릅니다. 최근에는 영화·드라마뿐 아니라 게임 음악으로 크로스오버의 범위도 확장되고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이제 크로스오버 작업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셈입니다. 한국의 K팝 음악이 더 많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서 세계에 전파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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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미국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 /메탈리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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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록 그룹 딥 퍼플이 1969년 로열 필하모닉과 협연한 ‘그룹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음반. 크로스오버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실황으로 손꼽힙니다.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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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모습. /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