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3조년에 1초'… 오차 거의 없는 '핵 시계' 만든대요
입력 : 2025.02.18 03:30
오차 없는 시계
-
- ▲ /그래픽=유재일
시계가 처음 인류 역사에 등장한 건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과거엔 시간을 잴 때 흔히 사용한 방법 중 하나가 일정하게 떨어지는 물방울을 측정하는 것이었어요. 20세기 초에는 석영 결정이 일정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특성을 이용한 '쿼츠 시계'가 발명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오차가 쌓여 실제 시간과 차이가 커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시계는 약속 시간이나 잠자리에 들 시간을 알려주는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더 정확한 시계가 필요해졌어요. 특히 첨단 산업 현장에서는 아주 작은 오차가 큰 문제를 낳을 수 있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금융 산업이지요. 오늘날 금융 거래는 세계에서 동시다발 이뤄지는데, 조금만 시간 차이가 있어도 거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금융업에선 밀리초(1000분의 1초) 단위로 시간을 동기화하는 첨단 시계가 필요해요.
스마트폰 지도 앱이나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을 때 필요한 위성 항법 장치(GPS)도 시계 없이는 작동하지 않아요. GPS는 우주에 떠 있는 위성이 쏜 전파가 도달한 시간으로 거리와 위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역시 아주 정밀한 시계가 꼭 있어야 해요.
세슘 원자 진동 관찰해 시간 측정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발명한 시계가 바로 원자 시계(atomic clock)입니다. 원자 시계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1초'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킬로그램(㎏)이나 캐럿(carat) 등 사물을 측정하는 국제 단위를 결정하는 국제도량형총회라는 기구가 있어요. 1967년 이 기구는 시간 단위도 제시했답니다. 1초는 '세슘-133 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세슘 원자가 뭐길래 1초를 정의할 때 쓰이는 걸까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1913년 원자가 특정 주파수에서만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시계는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인데요. 닐스 보어의 발견은 규칙적으로 진동하는 원자를 이용해 시간을 잴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어요. 과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진동수가 매우 많고 안정적인 세슘 원자가 시간을 잴 때 가장 적합한 원자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원자의 진동수가 높다는 것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비유하면 화소 수가 많은 것과 같아요. 그만큼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겠죠.
원자 시계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만드는 데에는 정밀한 과학기술이 필요해요. 원자의 진동수를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하려면 일단 원자를 한곳에 모아둬야 하는데, 세슘 원자는 빠른 속도로 이곳저곳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닐스 보어의 발견 이후 원자 시계가 나올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어요. 1948년 미국에서 초기 형태 원자 시계가 개발됐고, 실제 세슘 원자를 사용한 원자 시계는 1955년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원자 시계는 먼저 기체 상태의 원자를 분광기에 넣은 뒤 원자에 레이저를 쏴 고정해요. 그런 상태에서 원자의 진동수를 측정해 시간을 재죠. 이렇게 만든 원자 시계는 매우 정확해서 수백만~수천만 년에 1초 정도만 오차가 생긴다고 해요.
오늘날 원자 시계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표준 시간인 세계협정시(UTC)를 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세슘 원자 시계를 이용해 표준 시간을 재고 있어요. 세슘 원자 시계 9대로 측정한 평균값이 우리나라의 표준 시간이 된다고 합니다.
원자 시계 넘어서 핵 시계로
최근엔 원자 시계보다 오차가 작은 시계를 만들기 위해 세계가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세슘보다 진동수가 많은 이터븀이나 스트론튬을 이용한 원자 시계도 개발되고 있죠. 이터븀은 1초에 518조2958억3659만865번, 스트론튬은 429조2280억422만9877번입니다. 둘 다 세슘과 비교할 수 없이 진동수가 많고, 그만큼 원자 시계의 오차도 작을 것으로 예상돼요.
원자 시계보다 정확한 '핵 시계'도 개발되고 있어요. 핵 시계는 원자의 진동을 이용하는 원자 시계와 달리 원자의 핵을 이용하는 시계입니다. 시간을 재고자 물질의 진동을 이용한다는 원리는 같아요. 차이점은 원자핵은 원자에 비해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 전자기장(전기장·자기장)의 영향도 덜 받아 정확한 측정이 가능해요. 전자기장은 물질의 에너지 상태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문제는 원자핵은 원자에 비해 진동수가 적고, 진동하게 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에요. 원자핵은 원자와 달리 일반적 상황에서는 거의 진동하지 않고 외부 에너지나 핵 반응이 가해졌을 때 진동 상태가 돼요. 그래서 핵 시계 개념은 2001년에 처음 제시됐지만, 그동안 원자핵을 진동 상태로 바꾸는 문제를 풀지 못해 만들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 지난해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콜로라도볼더대, 오스트리아 빈 공대 연구진이 토륨-229 원자를 이용해 이 문제를 풀었어요. 이 원자는 원자핵 상태를 바꾸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지금까지 알려진 다른 어떤 원자핵보다도 작다고 해요. 연구팀은 토륨-229 원자핵의 상태를 바꾸는 실험에 성공해 핵 시계의 핵심 장치까지 제작했습니다.
이론적으로 핵 시계의 오차는 '3조년에 1초'라고 해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정확한 시계가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죠. 연구팀은 2~3년 안에 실제로 핵 시계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