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철학·인문학 이야기] "삶의 문제 한꺼번에 해결하려 말라" 가톨릭 혁신 이끈 교황의 생활 계명

입력 : 2025.02.18 03:30

놓아두며 살기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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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聖) 요한 23세(1881~1963·사진)의 별명은 '착한 목자'입니다. 그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강단이 있었어요. 1962년, 그가 이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에 여러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미사가 각국의 언어로 진행될 수 있게 된 것도 이때부터지요.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상이던 시절, 요한 23세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서로 맞서던 두 진영의 타협과 화해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착하고 부드러웠던 교황이 뚝심 있게 개혁을 이뤄낸 비결은 무엇일까요?

책 '놓아두며 살기'에 그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신부인 저자가 교황 성 요한 23세가 평생에 걸쳐 실천했던 십계명을 설명하는 내용이에요. "나는 내 삶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가 말한 첫 번째 계명입니다. 요한 23세는 하루하루를 신의 선물로 여겼어요. 우리는 흘러간 과거를 바꾸지 못합니다. 앞으로 닥칠 미래가 내 의지대로 흘러갈지도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요한 23세는 미래는 신의 뜻에 맡기고 순간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충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일이 흘러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신의 선함이 세상에 널리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일은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으니까요. 요한 23세는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지역의 교황청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되뇌곤 했대요. "오늘 하루 나는 상황에 나를 맞추겠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지낸다면 지혜로워지기 어렵습니다. 나와 결이 다른,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과의 만남은 내가 모르던 세상을 열어 줍니다. "저렇게도 살아가는구나" 하는 깨달음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지요. 나아가 자신을 올곧게 가다듬는 기회가 되곤 합니다. 이 점에서 내가 일상에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은 나를 이해와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품위 있게 행동하고 아무도 비판하지 않으며, 오직 나 자신만을 비판하고 바로잡겠다"입니다. 이어지는 계명에서는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라고 말해요. 먼저 내가 편안해야 다른 이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챙겨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를 받아주는 식으로 자신에게 너그러워선 안 됩니다. 아이를 좋은 쪽으로 자라게 이끄는 부모의 마음으로 자신을 챙겨야 해요.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좋은 책을 읽는 데 쓰겠다" "오늘 하루, 나는 착한 일을 한 가지 하겠다" 같은 계명을 보면 세상을 올곧게 만들 소중한 존재로 자신을 가꿨던 요한 23세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평정의 십계명을 소개한 이 책을 곁에 두고 틈틈이 읽으며 끊임없이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