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英에선 '유머 감각'이 신사의 자질… 세심한 표현력과 통찰력 필요해요

입력 : 2025.02.13 03:30

유머니즘

[재밌다, 이 책!] 英에선 '유머 감각'이 신사의 자질… 세심한 표현력과 통찰력 필요해요
김찬호 지음|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격 1만3000원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은 "웃음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웃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마디지요. 인류는 오랫동안 웃음에 많은 가치를 부여해 왔습니다. 그만큼 남을 웃기는 방법인 '유머'에도 관심이 많았죠. 최초의 농담집으로 알려진 '필로겔로스'가 출판된 것이 고대 그리스 때라고 하니 웃음을 기록한 역사 또한 까마득합니다.

오늘 소개할 책 '유머니즘' 또한 웃음에 관한 책입니다. 하지만 '유머'에 '휴머니즘'을 합쳐 지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재밌는 농담을 모아 놓은 책은 아니에요. 사회학자인 저자는 웃음과 유머를 학문적인 관점에서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저자는 남을 조롱하고 헐뜯는 데서 오는 웃음이 아니라 사람을 따스하게 품는 마음과 인간애로 연결되는 유머를 지향한다고 말하지요.

웃음은 왜 나오는 걸까요? 저자는 웃음이 "안도감을 확산시키기 위한 신호"라는 가설을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전한 공간, 즉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에 있을 때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이지요. 웃음이 오래전부터 행복감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여겨지는 이유라는 겁니다. 웃음은 소통 수단의 일종이며, 사람들은 웃음을 주고받기를 원합니다.

남을 웃기는 유머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스꽝스러움'과 유머를 구별합니다. 엉뚱한 말이나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전자라면, 후자엔 교양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요즘도 흔히 쓰는 '유머 감각'이라는 말은 1840년 영국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유머는 신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세련된 유머를 구사하려면 무언가를 민감하게 느끼는 통찰력과 세심한 표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각'이라는 단어가 덧붙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유머는 쉽지 않습니다. 유머는 자칫 남에게 짜증과 모멸감을 줄 수 있지요. 대표적으로 피부색이나 신체 장애 등을 폄하하는 장난이나 특정 집단을 희화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쁜 유머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웃음은 말과 행동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자면서 말이죠.

유머를 설명하기 위해 문학작품과 역사적 자료에서 다양한 인용구를 예시로 드는 것도 이 책의 장점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역을 떠나는 조선인 남성들이 기차역 플랫폼에서 열심히 제기를 차며 웃고 노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는데도 일본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웃음을 그치지 않은 것이죠. 이 모습을 지켜본 일본군은 얼떨떨해했대요. 저자는 슬픔과 절망을 환희와 웃음으로 맞받아쳐온 한국인의 문화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설명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우리는 요즘 얼마나 잘 웃고 있는지 되묻게 돼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이진혁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