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책상은 '양탄자'로, 의자는 '시계'로… 자신만의 언어 사용하다 고립된 남자
입력 : 2025.02.06 03:30
책상은 책상이다
"이제 달라질 거야. 이제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오늘 소개할 이야기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이런 다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일상에 완전히 질려 삶에 자극을 줄 무언가를 찾고 있죠.
이 노인은 기발한 생각을 해냅니다. 바로 모든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한 거예요. 가령 침대는 사진으로, 책상은 양탄자로, 의자는 시계로, 신문은 침대로 말이죠.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노인은 자신이 만든 언어 체계 안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문제는 이제 단어들의 원래 의미를 기억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들과 대화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릅니다. "선생님도 내일 축구 보러 가실 건가요?"와 같은 평범한 질문에도 노인은 웃음보가 터집니다. 책에는 그 사람에게 '축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아마 아주 엉뚱한 말이기 때문이겠죠. 즐거움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든 노인은 결국 고립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는 1969년 발간된 페터 빅셀의 소설집 '책상은 책상이다'의 표제작입니다. 빅셀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문학가예요. 모든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실려 있을 정도죠. 이 책은 40여 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읽히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는 뜻이지요.
소설집은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 가득합니다. 또 다른 단편 '기억력이 좋은 남자'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기억력이 좋습니다. 기차를 좋아하는 그는 열차 시간표를 빠짐없이 다 외우고 있죠. 그런데 정작 기차를 타본 적은 없습니다.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을 외울 수 있다면 굳이 그 시간을 체험하기 위해 열차를 탈 필요가 없지"라면서요.
그러나 기차역에 안내 사무소가 들어서며 그의 인생이 뒤바뀝니다. 공무원이 모든 것을 척척 대답해 주니까요. 그는 공무원을 시험하기 위해 기차 출발과 도착 시간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지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답이 돌아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이런 질문까지 던지기 시작합니다. "역 앞에 있는 계단은 전부 몇 개죠?" "그건 모르겠는데요." 공무원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남자는 이제 모든 집의 계단 개수를 외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계단을 보기 위해 기차 여행을 떠나죠.
다른 수록작의 등장인물들도 개성 가득합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일직선으로만 길을 가는 남자, 남을 웃기는 데 소질이 없는 광대, 모든 것을 '요도크'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인물들에게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특히 표제작은 언어와 사고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 소통 단절 문제를 시사하죠. 현대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사회 문제를 유머를 통해 통찰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