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75세에 그림 시작한 할머니의 교훈 "이제라도 시작해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입력 : 2025.01.23 03:30
모지스 할머니
언젠가부터 '국민OO'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국민가수, 국민배우, 국민MC, 심지어 국민여동생까지. 다소 과장된 표현이겠으나 국민 모두가 알 만큼 유명하고 또 호감이라는 뜻이겠지요.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모지스 할머니'는 미국인의 국민화가로 불립니다. 1961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모든 미국인이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합니다"라는 추도사를 발표할 정도였지요. 이 책은 미술 교육인인 저자가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을 소개하는 예술 에세이예요.
모지스가'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는 전문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죠. 모지스는 1961년 101세로 사망할 때까지 1600여 점이나 되는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 그녀가 직접 보고 경험한 일상의 장면들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을 '소박파'라고 불러요. 저자는 이들에게 '본능에서 표출된 순수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순수함이 바로 모지스 할머니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모지스 할머니가 작품 활동을 하던 20세기 초중반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경제 불황이 겹쳤던 격랑의 시기였습니다. 그의 순수함이 담긴 작품들은 어려운 상황의 연속으로 피폐해진 미국인들의 마음을 다독였죠.
그의 작품 속 따뜻함은 동시대 사람들에게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지스는 저자에게도 아주 특별한 작가라고 해요. 모지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슈거링 오프'에는 함께 단풍나무 시럽을 만드는 마을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그림 속 모습과 자신이 어릴 적 지내던 지리산 언저리 마을에서의 경험을 겹쳐봅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얻는 재료로 만드는 음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의 맛이 난다"는 감상을 남기죠. 미술 작품은 때때로 다른 문화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공통의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나면 나는 창밖의 풍경을 관찰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눈을 감고 추억들을 떠올리죠." 책 곳곳엔 그림과 함께 모지스 할머니가 남긴 말들이 쓰여 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가 건네는 말을 통해 우리는 풍경과 친해지는 법을 배우고, 때론 위로와 용기를 받기도 합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저는 과일과 잼으로는 상을 받았지만 그림으로는 상을 못 받았어요"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평판이나 인정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할머니의 인생을 통해 깨닫게 되지요.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았던 말은 바로 이것이에요. "이제라도 그림을 그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조금 더 일찍 미술을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말에 모지스 할머니가 내놓은 대답이에요. '늦었다' '안 된다' '힘들다'…. 부정적 표현이 만연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