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철학·인문학 이야기] 프랑스 법관이 본 미국의 민주주의… 독재보다 무서운 '다수의 횡포' 경고

입력 : 2025.01.21 03:30

미국의 민주주의

1838년 간행된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표지. /위키피디아
1838년 간행된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표지. /위키피디아
1789년부터 1848년까지 유럽은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왕이 사라진 세상. 사람들은 이제 시민 모두가 주인인 시대가 펼쳐지리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민주주의는 쉽게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워졌고, 그때마다 독재자가 등장하거나 왕이 다시 세워지곤 했으니까요. 프랑스의 법관이었던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은 미국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영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약하고 정부와 행정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꾸려나갔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1831년, 토크빌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미국 여행에 나섭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미국의 민주주의'예요. 그는 미국을 '유년기 없이 바로 청년이 된 사람'에 빗댑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왕의 다스림을 받았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는 시민들끼리 모든 것을 논의하고 결정짓는 습성이 쉽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지요. 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무작정 따르기보다, 스스로 자기 행동을 책임지며 도덕적으로 삶을 가꾸려고 노력합니다. 그만큼 개인주의 색채도 강했어요.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미국인들의 습성과 도덕성에서 짚어냅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은 미국 같은 민주주의의 풍습이 없었기에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 토크빌은 미국을 아주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위험도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지요. 그러나 다수가 언제나 옳지는 않아요. 토크빌은 정의롭지 못한 다수가 권력을 잡을 때, 여느 독재보다 훨씬 잔인하고 무서운 '민주적 전제'(democratic despotism)가 펼쳐진다고 걱정합니다. 1812년, 캐나다 영토를 둘러싸고 미국과 영국은 전쟁을 벌였어요. 정치인들은 영국에 대한 적대감을 한껏 부추겨 미국을 싸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한 신문이 이런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지적하자 화가 난 군중들은 신문사를 습격해 직원들을 폭행합니다. '민주적인' 재판을 담당한 배심원들마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폭행범들을 풀어주지요. 입법과 행정, 사법이 모두 다수의 손에 들어갔기에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서로에게 큰 손실만 남긴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습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려면 독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수의 횡포를 막을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산업이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시민들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한 정부를 견제받지 않는 다수가 차지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독재보다도 무서운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어요. 이를 막으려면 민주적인 풍습과 도덕이 사회에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 점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합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