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제헌 헌법 둘러싼 14개 논쟁 조명… 헌법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 알려줘요
입력 : 2025.01.20 03:30
헌법의 순간
박혁 지음|출판사 페이퍼로드|가격 1만9000원
박혁 지음|출판사 페이퍼로드|가격 1만9000원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법을 헌법이라고 합니다. 헌법은 왜 중요할까요? 이 질문은 '우리 삶에서 공기와 물이 왜 중요할까요?'라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공기와 물은 모든 생명의 삶을 뒷받침합니다. 마찬가지로 헌법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의 정치적, 사회적 삶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요.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순간, 또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순간 헌법을 지킨다는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헌법의 순간'은 1948년 제헌국회 회의록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헌법이 어떻게 제정됐는지 추적하는 책입니다. 제헌국회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처음 제정한 국회를 뜻합니다. 1948년 6월 23일부터 7월 12일까지 20일 동안 헌법 제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진 14개의 논쟁을 조명합니다.
당시엔 어떤 쟁점들이 있었을까요? 나라 이름, 기본권의 주체, 영토 조항,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친일파 청산, 고문받지 않을 권리, 정교(政敎)분리, 노동자의 경영 참여권, 대통령제... 오늘날까지도 우리 현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들입니다. 저자는 당시 치열한 고민을 통해 만든 헌법 조항들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려주지요.
교육을 예로 들어 볼까요. 제헌헌법 제16조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 저자는 여기서 '적어도'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초등교육 6년간은 무상 의무교육을 실현하고 나라 경제가 나아지면 중등교육으로 무상교육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약속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라는 단서를 남겨 나중에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범위를 확대하자는 약속을 언제든 지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당시 헌법엔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고민이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제헌헌법 제95조를 보면 "국가의 수입 지출의 결산은 매년 심계원에서 검사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심계원(審計院)이라는 회계검사 기관을 두었죠. 1948년엔 나라 적자가 약 85억원이 됩니다. 1년 예산이 200억이 안 됐으니 예산 대비 적자 폭이 엄청납니다. 나랏돈을 부정하게 쓰거나 허투루 새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회계검사 기관 설치 조항을 헌법에 마련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저런 흔들림에도 헌법의 순간에 새겨진 헌법 정신은 면면히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 즉 자유롭고 평등하며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제헌의원들이 바랐던 헌법 정신이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