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물건 넣는 서랍은 한자 '설합'서 유래… 혀처럼 쏙 내미는 그릇이란 뜻이래요

입력 : 2025.01.13 03:30

한자의 쓸모

[재밌다, 이 책!] 물건 넣는 서랍은 한자 '설합'서 유래… 혀처럼 쏙 내미는 그릇이란 뜻이래요
박수밀 지음|출판사 여름의서재가격 2만원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집필했습니다. 1687년에 출간돼 근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 책을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17세기는 물론 18세기까지도 유럽의 학문 세계에선 로마 제국의 유산인 라틴어가 보편적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논문이나 학술 저작은 라틴어로 써야 유럽 전체에서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동아시아에서는 한문이 라틴어와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 동아시아에서는 한(漢) 제국이 각각 라틴어와 한문을 보편 언어로 보급시켰습니다. 불과 19세기까지만 해도 한문은 동아시아의 공용어였죠. 중국어는 당연하거니와 우리말과 일본어에서도 한문을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인 배경이랍니다. 한문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을 주목할 만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순서 상관없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흥미로운 한자어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단어들의 유래를 들려주지요. 서랍은 왜 서랍이라 부를까요? 서랍은 본래 설합(舌盒)에서 유래된 말이라 합니다. 혀 설에 그릇 합, 그러니까 혀처럼 쏙 내미는 그릇이란 뜻이랍니다. 책상의 서랍을 열면 입에서 혀가 쏙 나오듯 상자가 나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지요. "장난치지 마!" 할 때 장난은 한자어 작란(作亂)에서 왔습니다. 작란은 어지러운 일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얌체 짓 하지 마"의 얌체는 염치(廉恥), 곧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에서 온 말입니다. 얌체 짓은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입니다.

다른 단어들을 더 살펴볼까요? "창피하다"라는 말의 창피(猖披)에서 창(猖)은 옷은 입었지만 띠를 매지 않은 모양을, 피(披)는 옷을 열어 헤친 모양에서 유래한 한자입니다. 옷고름이나 끈을 제대로 죄어 매지 않고 풀어 헤친 모습이에요. 자칫 속옷이 보일 수도 있어 민망합니다. 그러니 창피한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을 때 '옷깃을 여미다'라는 말을 쓰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옷은 예의범절이나 마음 자세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 모르고 그냥 말하고 글을 써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어와 말의 뜻을 더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말과 글이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입니다. 말의 기원과 배경,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소통할 수 있다면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될 수 있겠지요. 단어의 뜻을 지레짐작하여 잘못 사용해 낭패를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미묘한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오해도 줄일 수 있지요. '한자의 쓸모'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