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54년 이어진 독재정권, '아랍의 봄' 이후 내전으로 무너졌죠
입력 : 2025.01.01 03:30
시리아 내전
- ▲ 2024년 12월 8일(현지 시각)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웨덴 스톡홀름시티역 광장에 모인 시리아인들이 환호하고 있어요. /뉴스1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정권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면서 발생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며 종교·민족·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됐죠. 이 때문에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시리아 내전이 왜 발생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제국들의 땅, 시리아
먼저 시리아가 어떤 곳인지 알아볼까요. 시리아라는 이름은 기원전 21세기에 문명을 이루기 시작한 도시국가 '아수르'에서 유래했어요. 그리스인들이 이를 시리아로 부르면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죠.
시리아는 여러 제국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아시리아 제국, 바빌로니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에 이어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시리아 지역을 정복했고, 이후엔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이 들어섰죠. 636년 아랍 이슬람 제국이 시리아를 점령한 뒤엔 차례대로 튀르크인과 아랍인의 손을 거쳤습니다. 1516년부터 1918년까지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지배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엔 프랑스 위임통치령이 됐다가 1946년 시리아 아랍 공화국으로 독립했죠.
'아랍의 봄' 이후 내전 발발
독립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시리아엔 독재 체제가 들어섭니다. 아랍민족주의 이념 등을 내세운 바트(Baath)당에 의해 1963년 일당 독재가 시작됩니다. 1970년엔 국방 장관이었던 하페즈 알아사드가 당내에서 권력을 잡고는 1971년에 대통령이 됐어요. 그는 2000년에 사망할 때까지 철권통치를 이어갔습니다. 비밀경찰을 곳곳에 심어 자신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 입을 막았죠. "시리아의 개는 국경을 넘어가야만 짖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독재가 이어졌어요. 심지어는 1982년 이슬람주의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는데, 최대 4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하페즈 사후엔 그의 아들 바샤르가 대통령을 이어받았어요. 시리아는 원래 40세부터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 34세였던 바샤르를 대통령에 앉히려고 헌법까지 바꿨답니다. 바샤르는 안과 의사였어요. 그는 의사가 병을 고치듯 시리아의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리아 국민은 아버지 시대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에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어요.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언론 역시 여전히 통제됐죠.
그런데 뜻하지 않은 바람이 이웃 국가에서 불어옵니다. 2011년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민주화 시위가 튀니지에서 시작해 주변 국가로 번진 거예요. 수십 년 동안 군림했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 정권이 잇달아 무너졌어요.
시리아에서도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납니다. "의사 선생, 다음은 당신 차례야!"라는 반정부 구호도 등장했죠. 그러다 민주화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잡혀간 13세 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요. 이후 반정부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결국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의 내전으로 비화됩니다.
문제는 내전 과정에서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했다는 것이었어요. 시리아가 중동과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죠. 시리아 정부군은 러시아와 이란이 도왔어요. 러시아는 시리아의 타르투스항에 해군기지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리아를 놓쳐서는 안 됐죠. 이란은 레바논에 있는 친(親)이란 무장 단체 헤즈볼라를 도우려면 반드시 시리아를 같은 편에 둬야 했어요. 헤즈볼라에 무기 등 물자를 지원하려면 시리아를 통해야 했거든요.
반면 반정부군은 미국과 영국,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이 도왔죠. 러시아·이란과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도와준 거죠. 미국과 영국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민주주의를 가져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어요. 튀르키예와 다른 아랍 산유 왕정국가들은 이란에 대항하기 위해 반정부군을 지원합니다. 전쟁이 나자 시리아 국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떠났어요. 이웃 국가 튀르키예로 약 360만명, 유럽으로 약 100만명의 난민이 몰렸죠.
국제전이 된 시리아 내전
이처럼 시리아 내전은 외국이 깊숙이 관여하는 국제전이 되어 쉽게 끝날 수 없었죠. 더욱이 반군이 하나로 뭉치지도 못했어요.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독재 정권이 무너진 시리아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달랐죠. 이슬람교 원칙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이슬람주의자, 세속적이고 다양한 종교를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는 민주주의자, 시리아 정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싶은 쿠르드 독립주의자 등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13년간 이어진 내전은 최근 1~2년 사이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는 예전처럼 시리아를 지원할 수 없었어요. 또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공격하면서 헤즈볼라 역시 시리아 정부군을 돕기 어려워졌죠. 이란의 지원도 줄어들었고요. 이처럼 정부군이 약해지자 2024년 11월 튀르키예가 지원하는 반군 세력 중 극단주의 단체인 HTS(시리아 해방 기구)가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를 장악했고, 12월엔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하며 54년 아사드 집안의 부자 세습 독재 체제가 무너진 거죠.
이제 시리아 국토 대부분은 튀르키예의 후원 아래 HTS를 중심으로 뭉친 SNA(시리아 국민군)가 차지하고 있어요. 그러나 북동부는 또 쿠르드 반군 세력인 SDF(시리아 민주군)가 세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튀르키예는 SDF를 몰아내려고 해요. 튀르키예 내 쿠르드 독립운동 조직과 SDF가 연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HTS는 반군끼리 힘을 합치자며 SDF에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했지만 SDF는 응하지 않고 있어요. 독재 정권 축출 이후에도 시리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이유입니다.
- ▲ 유럽과 중동을 잇는 시리아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요.
- ▲ 2013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반정부군 병사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박격포 공격 지점을 설정하고 있어요. /로이터 연합뉴스
- ▲ 알아사드(왼쪽) 시리아 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시리아에서 열린 군사 행진을 지켜보고 있어요.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에서 군사 지원을 받았습니다.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