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겨우내 황갈색 단풍잎 달고 있는 나무… 한반도에는 암그루만 산대요

입력 : 2024.12.30 03:30

감태나무

왼쪽 사진은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는 감태나무예요. 오른쪽 사진은 흑진주같이 새까만 감태나무의 열매. /김민철 기자
왼쪽 사진은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는 감태나무예요. 오른쪽 사진은 흑진주같이 새까만 감태나무의 열매. /김민철 기자
요즘 산이나 수목원에 가보면 단풍 든 황갈색 잎을 그대로 달고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주변 나무들은 상록수 빼곤 거의 다 잎이 졌는데 이 나무만 온전히 잎을 달고 있습니다. 신갈나무와 대왕참나무 같은 참나무 종류도 겨울에 잎을 달고 있지만 잎이 말라서 뒤틀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의 잎은 마르긴 했지만 한 장 한 장 반듯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감태나무 얘기입니다.

감태나무가 겨우내 잎을 달고 있는 것은 좀 극단적일 정도입니다. 3월 말 봄소식을 알리는 보춘화는 물론 노루귀, 수선화, 생강나무꽃까지 다 피었는데 감태나무는 여전히 잎을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월 초 새잎이 날 즈음에야 묵은잎을 떨굽니다. 그래서 겨울에 숲에 가면 이 나무를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한때 이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면 중풍이나 관절에 좋다고 해서 함부로 베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나무가 잎을 겨우내 달고 있는 이유는 조상이 상록수여서 그 유전자대로 잎자루와 가지 사이 세포층인 '떨켜'가 잘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칼바람 속에서 단단히 잎을 매달고 있는 것을 보면 어미 나무가 새순의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상술이 뛰어난 일본인들은 입시철에 이 나뭇잎을 포장해 수험생들에게 주는 선물로 판다고 합니다. 떨어지지 말고 꼭 합격하라는 의미입니다.

감태나무는 서해안과 충청 이남의 양지 바른 산기슭에서 그리 드물지도, 아주 흔하지도 않게 자랍니다. 4월 중순쯤 잎과 함께 작고 연한 황록색 꽃이 우산 모양으로 피고 가을엔 콩알만 한 열매가 달립니다. 흑진주를 연상시킬 만큼 새까만 것이 생강나무 열매와 닮았습니다. 감태나무는 녹나뭇과 생강나무속 나무입니다.

이름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감태나무가 잘 자라는 곳은 바닷가에 인접한 숲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달린 잎이 해초 감태와 닮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제주도 등 일부 지방에서는 얼핏 보면 동백나무와 닮았고 나무 껍질이 밝은 회색이어서인지 백동백나무라고 부릅니다.

감태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나무에 있는 암수딴그루로 한반도, 일본, 중국 등지에서 자라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반도와 일본에는 암그루만 산답니다. 암그루만 살면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요? 놀랍게도 한반도와 일본의 감태나무는 암그루 혼자서 수정 없이 홑몸으로 종자를 맺는다(무수정 결실)고 합니다. 학계에서는 먼 옛날 감태나무 암그루가 혼자 한반도와 일본에 도착한 후 멸종을 피하려고 고안한 방식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감태나무는 서울 근교에서 자생하지는 않지만 서울 홍릉숲, 광릉 국립수목원, 인천수목원 등에서 겨울에 별도의 방한 조치 없이도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전국 어디에 심어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김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