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조선시대 땐 책 대여료가 하루치 쌀값… 보고싶은 소설은 베껴 썼대요
입력 : 2024.12.17 03:30
조선의 독서생활
조선 정조 때 기록을 보면 여성들이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소설 읽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옛날엔 책이 귀해 사람들이 책을 다 소유하지 못했어요. 대신 책을 빌려주는 '세책방'이 있었지요. 그런데 책 대여료가 얼마나 비싸길래 가산을 탕진할 정도였을까요? 당시 책 한 권을 빌리는 돈은 한 가족이 하루 먹을 쌀값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럼에도 빌려볼 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책을 빌려 보는 게 여의치 않으면 필사를 했습니다. 책 한 권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지요.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당시엔 인쇄가 어려웠기에 보고 싶은 소설은 베껴 써야 했습니다. 양반가 여성들은 물론, 왕실 사람들도 필사했습니다. 정조의 연인이었던 의빈 성덕임도 정조의 여동생 청연공주, 청선공주와 함께 소설 필사를 했습니다.
여자들만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훗날 정조의 장인이 되고 세도 정치를 시작했던 김조순도 궁궐에서 숙직을 하면서 연애소설을 읽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남녀 불문하고 좋아했다는 것이지요.
소설 열풍이 불다 보니 소설 내용을 부분적으로 각색한 '이본(異本)'도 만들어지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으신가요. "나는 춘향전에서 이몽룡보다도 변학도가 더 좋다. 변학도가 춘향이랑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쓰면 됩니다. 붓 잡은 사람 마음대로 써도 됩니다. 이건 소설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필사하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 '임진록'만 하더라도 150개에 달하는 이본이 있는데, 전혀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거나 원래 소설과는 다른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소설도 창작되지요.
그래서인지 조선 후기 패관소설(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도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박씨부인전입니다. 원래 하늘의 천녀였던 박씨 부인이 인간이 되었는데, 얼굴은 못생겼지만 도술이 뛰어났습니다. 처음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지만 절세미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병자호란이 벌어지자 다른 여성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적군 대장의 목을 베어 나라를 지켜냅니다.
이 이야기 안에 조선 여성들의 바람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얼굴이 예뻐지고, 남편에게 사랑받고, 전쟁이 벌어져도 안전하고, 나라로부터 인정받는다. 독자의 욕망이 아주 강하게 반영돼 있지요. 이 외에도 방한림전이나 홍계월전에서도 여성 주인공이 활약하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마침내 이야기로 적어서 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몹시 활발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