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베토벤 '합창'·헨델 '메시아'… 연말 클래식 애청곡이죠
입력 : 2024.12.16 03:30
연말 시즌 클래식
- ▲ 올해 창단 35주년을 맞은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부르고 있어요. 예수 탄생을 다룬 '메시아'는 성탄을 앞두고 즐겨 연주되는 종교곡입니다. /서울모테트합창단
클래식 '연금 곡' 1위는 베토벤 '합창'
만약 작곡가가 살아 있었다면 넉넉한 '연금'을 받았을 법한 클래식의 연말 애청곡 1위는 베토벤(1770~1827)의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특히 올해는 '합창'이 초연된 지 200주년이어서 사실상 1년 내내 '합창'이 울려퍼졌지요.
본래 교향곡은 인간의 노래가 들어가지 않는 순수 기악곡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마지막 교향곡인 '합창'의 마지막 4악장에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의 시 '환희의 송가'에 바탕한 독창과 합창을 결합시켰지요. 기악과 성악이 하나되는 음악적 시도 외에도 이 교향곡의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베토벤은 이 교향곡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된다"는 인류애를 설파한 것입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음악학자 루이스 록우드는 '합창'에 대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애로운 신의 날개 아래 인류가 하나 되는 형제애의 이미지를 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베토벤이 음악의 성인을 뜻하는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건 어쩌면 '합창' 덕분일지도 모르지요.
헨델과 바흐의 종교곡
성탄절을 앞두고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다룬 종교곡들도 사랑받습니다. 연말에 가장 자주 연주되는 종교곡은 역시 작곡가 헨델(1685~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은 자'이자 구원자를 의미하지요. 제목처럼 구약과 신약성서 가운데 메시아의 도래와 예수 탄생, 부활에 대한 구절들을 묶은 종교곡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정작 이 작품은 연말이 아니라 1742년 4월 13일 더블린의 음악당에서 초연됐다는 점입니다.
당시 아일랜드에 머물고 있던 헨델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빈(救貧) 병원, 보건소를 후원하기 위한 자선 공연으로 '메시아'를 초연했지요. 영국 음악 역사가인 찰스 버니(1726~1814)는 "'메시아'는 이 나라와 세계에서 그 어떤 음악 작품보다도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혔으며, 고아를 돌보고, 음악 기획자들을 계속해서 부유하게 해주었다"고 재치 있게 표현했습니다. 그 뒤에도 '메시아'는 보육원 건립 기금 마련 등 자선 공연에 즐겨 연주됐지요. 심지어 헨델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메시아'의 악보를 보육원에 기부하도록 유언장을 고쳐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연말이면 이웃 돕기 모금을 하는 것처럼 '메시아'는 탄생 과정부터 자선 공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셈입니다.
국내에서도 올해 창단 35주년을 맞은 서울모테트합창단(지휘 박치용)과 부천시립합창단(지휘 김선아) 등 많은 합창단들이 '메시아'를 연주합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이번에는 전문 독창자와 합창단만 노래했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무대 위 합창단과 객석 관객들이 함께 부르는 '싱얼롱(sing-along)' 방식으로 '메시아'를 연주해 화제를 모았지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역시 성탄절부터 동방 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를 기념하는 공현(公現) 축일까지 예수의 탄생과 연관된 축일들을 기념하기 위한 종교곡입니다. 모두 여섯 곡의 칸타타로 구성된 연작인데, 전곡을 연주하면 두 시간 반에 이르지요. 바흐는 1723년 라이프치히의 음악 감독(칸토르)으로 취임한 뒤 교회 예배에서 사용하는 종교곡인 칸타타를 직접 작곡하고 연주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바흐는 단지 성탄을 축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사와 음악을 통해서 앞으로 다가올 수난(受難)과 부활까지 내다보는 거대한 연작을 완성했다"(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는 설명입니다.
'라보엠'과 '호두까기 인형'
세밑(한 해가 끝날 무렵)에는 종교곡만 연주되는 건 아닙니다.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연말마다 즐겨 공연되는 작품이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라보엠'과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라보엠'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의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 사랑을 다룬 멜로물입니다. '보엠'은 본래 유럽 일대를 떠도는 집시 '보헤미안'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하지만 낭만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19세기에는 젊은 예술가들을 일컫는 말이 되지요. 뮤지컬 '렌트'를 비롯한 여러 청춘극들의 원조에 해당하는 '라보엠'은 푸치니의 서거 100주기인 올해 더욱 사랑받았지요.
반면 차이콥스키의 발레에서 호두까기 인형은 주인공 소녀 마리가 받은 선물입니다. 마리가 이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든 사이에 깨어난 호두까기 인형과 장난감 병정들이 생쥐들과 전쟁을 벌이고 결국 승리한다는 동화적 내용이지요.
장르와 줄거리, 심지어 작곡가의 국적까지 다른 두 작품이 연말에 유독 사랑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두 작품 모두 성탄 전야가 배경이라는 점입니다. '라보엠'의 남자 주인공인 시인 로돌포와 바느질 품삯으로 생계를 꾸리는 여주인공 미미가 파리의 차가운 다락방에서 처음 만나는 때가 크리스마스이브이지요. 불 꺼진 다락방에서 우연히 손을 맞잡는 로돌포 역의 테너가 부르는 아리아가 '그대의 찬 손'입니다. 여기에 미미 역의 소프라노는 '내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로 화답하지요.
결국 오페라 '라보엠'은 성탄 전야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호두까기 인형'도 소녀 마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을 받은 뒤 벌어지는 꿈과 환상의 이야기입니다. 성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기에 연말에 더욱 사랑받는 것이지요. 올 연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 작품들 가운데 한 편을 함께 보는 건 어떨까요.
- ▲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공연 장면. 가난한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성탄 전야가 배경이라 연말에 사랑받는 작품이지요. /국립오페라단
- ▲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 모습.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지는 환상적 이야기를 음악과 무용으로 표현하지요. /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