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기억하는 작업… 기억 흔적 따라가면 '나' 발견할 수 있죠

입력 : 2024.12.09 03:30 | 수정 : 2024.12.09 10:34
[재밌다, 이 책!]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기억하는 작업… 기억 흔적 따라가면 '나' 발견할 수 있죠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지음|윤석헌 옮김
출판사 레모가격 1만3000원

20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조르주 페렉은 이 책에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통찰을 담았어요. 그는 '실험적 글쓰기의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요.

저자는 글쓰기의 종류를 사회학적, 자전적, 유희적, 소설적 글쓰기 네 가지로 분류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했어요. 그래서 저자는 자신을 "네 개의 밭을 가는 농부"로 비유했어요.

이 책은 작가 사후에 그가 남긴 글을 모은 것인데요. '자전적 글쓰기'라는 주제로 메모·단편·연설·비평·편지 등 다양한 유형의 글을 실었습니다.

이 책의 서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입니다. 표제작 '나는 태어났다'에서 페렉은 자신의 유년기를 회고하지만, 시간 순서에 따라 자신의 삶을 기술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과 현재까지의 일들을 나열하며 그 사이 맥락은 독자가 상상하도록 남겨두지요.

페렉은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말해요. 기억을 되짚는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흔적을 쫓는 과정인 것이지요. 페렉은 망각된 순간들을 무언가로 대체하려 하지 않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공백 자체를 삶의 한 맥락으로 수용합니다.

페렉에게 망각은 글쓰기의 핵심 요소입니다. 망각은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요.

페렉은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과잉되지 않으며, 차분한 관찰자적 태도를 유지해요. 책 속의 다른 작품인 '모리스 나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페렉이 남긴 소설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페렉의 글은 독자를 단순히 관찰자로 머무르게 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그가 남겨둔 기억의 공백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기억 또한 떠올리게 되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자서전이 아니에요. 글쓰기 자체를 기억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실험으로 삼은 페렉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탐구하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지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또한 망각이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찾는 창조적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책과 함께 자신의 기억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세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