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좋은 이야기'가 가진 커다란 힘… 똑같은 일상을 다르게 보게 해줘요

입력 : 2024.12.05 03:30

삶의 발명

[재밌다, 이 책!] '좋은 이야기'가 가진 커다란 힘… 똑같은 일상을 다르게 보게 해줘요
정혜윤 지음|출판사 위고가격 1만7000원

"일상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나를 조금 더 앞으로 가보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방송 프로듀서인 저자는 '좋은 이야기'엔 커다란 힘이 있다고 해요. 자신이 직접 취재했거나 경험한 이야기, 혹은 책 속 이야기에 감탄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현실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죠. 이 책은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가 가진 힘을 전해줍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간 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한 직후 사형을 당한 조선 출신 전범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전남 보성 출신 이학래씨는 태국 콰이강 다리 건설 현장에서 일했어요. 이 다리를 통과하는 철도를 짓는 과정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만큼 현장이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았죠.

그는 전쟁이 끝나자 연합군에 붙잡혔고, 포로를 학대했다는 죄로 1947년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아요. 호주군 군의관의 호의적 증언 덕에 사형 직전 기적적으로 풀려난 이씨는 억울하게 죽은 동료들을 위해 자신이 죽는 날까지 조선인 전범 문제를 세상에 알리려고 애썼어요. 자신과 비슷하게 전쟁에 끌려와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당한 친구 조문상의 유서를 복사해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곤 했죠.

조문상의 유서 말미엔 이런 글이 적혀 있어요 "자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외에도 책에는 자연재해로 집을 잃거나, 말기암에 걸린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실려 있어요. 저자는 비극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처를 딛고 회복해가는 사람들을 주목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죠.

저자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선 세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앎'이라는 것이죠. 살던 대로 살면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요.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니까요. 뭔가를 모르는 상태에선 삶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변화가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세상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항상 되돌아보고, 늘 새로운 앎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리고 이것을 두고 '삶의 발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은 모닥불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진화해 온 '이야기 공동체'라고 해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랍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