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꿈의 비만약', 장에서 나오는 포만감 호르몬 모방했대요

입력 : 2024.12.03 03:30

위고비의 원리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지난 10월 한국에 정식 출시된 비만 약 '위고비'에 대한 뉴스들을 봤을 거예요. 위고비는 글로벌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만든 비만 치료약이에요. '괴짜 사업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다이어트 비결로 위고비를 꼽으며 '머스크의 비만약'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사람마다 다르지만 위고비를 맞은 사람은 평균 15% 정도 체중 감량 효과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체중 감량뿐 아니라 여러 질환에 위고비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로 심부전이나 심뇌혈관 질환, 수면 무호흡증처럼 비만과 관련 있는 질환에 효과가 있어요. 이 질환들은 체중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가 있기 때문에 위고비를 맞으면 자연스럽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따라서 위고비는 비만 약을 넘어 '만병통치약'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오늘은 위고비와 비만 약의 원리에 대해 알아볼게요.

음식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요

위고비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라는 호르몬을 모방한 성분으로 만드는 약입니다. 보통 이 호르몬을 GLP-1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밥을 먹으면 장에서 GLP-1이 분비돼요. 이 호르몬은 우리가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식욕을 줄여준답니다.

이 호르몬의 효과는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호르몬이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GLP-1의 작용 원리를 밝혀낸 과학자가 바로 한국인이에요.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장에서 만들어진 GLP-1 호르몬이 뇌 시상하부 가운데와 등쪽에 있는 'DMH'라는 신경세포에 달라붙어서 식욕을 조절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나 대사 과정(신체 내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곳입니다. 체온이나 생체리듬도 모두 시상하부가 조절해요.

연구팀은 GLP-1의 원리를 찾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이른바 '치킨 실험'이에요. 실험에 참가한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치킨을 먹게 했는데, 한 그룹에만 비만 약을 투여했어요. 결과는 놀라웠어요. 비만 약을 맞은 사람들은 치킨을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포만감이 높아졌고 실제로 치킨을 조금만 먹고도 금방 배가 부르다고 느꼈어요.

가장 배부른 상태를 100으로 표현한다면, 비만 약을 맞지 않은 그룹이 치킨을 먹은 뒤 느낀 포만감은 70.6이었어요. 그런데 비만 약을 맞은 사람들은 치킨을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배부름 정도가 71.6이었어요. 치킨을 먹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죠. 따라서 자연스럽게 치킨을 적게 먹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비만 약에 들어있는 GLP-1 호르몬은 시상하부에 있는 배부름을 느끼는 신경세포에 달라붙어 활성화돼요. 원래 이 호르몬은 음식을 먹고 장에서 소화가 될 때 나오는데, 음식을 먹기 전에 호르몬이 작용하면서 밥을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된 거죠.

당뇨 치료제 부작용에서 비만 약 탄생

오늘날의 비만 약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요? 비만 치료 약에 들어가는 GLP-1이 발견된 것은 1983년입니다. 이때 과학자들은 장에서 이 호르몬이 나온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이후 GLP-1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 약을 개발하는 연구가 계속됐습니다. 처음에는 비만 치료제가 아니라 당뇨병 치료제를 연구했어요.

GLP-1은 혈당을 높이는 호르몬인 '글루카곤'을 억제하는데요. 이런 효과를 내려면 몸 밖에서 주입한 GLP-1이 췌장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위고비를 만든 노보노디스크는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GLP-1을 살짝 변형시켜 혈액을 따라 췌장까지 가게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GLP-1을 이용한 당뇨병 치료제를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이 당뇨병 치료제의 임상 과정에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어요. 바로 이 약을 맞은 시험 참가자들의 체중이 줄어든 겁니다. 처음에는 부작용이라 걱정했는데, 노보노디스크는 이를 이용하면 효과적인 비만 약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봤어요. 그렇게 GLP-1을 이용한 비만 치료제 연구가 시작됐고, 2014년엔 '삭센다'라는 비만 치료제가 나옵니다. 삭센다는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고, 체중 감량 효과도 크지 않았어요. 다시 연구를 거쳐 GLP-1 함량을 늘린 비만 치료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위고비'랍니다.

GLP-1을 이용한 비만 치료약이 위고비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같은 성분으로 '젭바운드'라는 비만 치료약을 만들었습니다. 국내 제약사들도 비만 약 시장에 뛰어든 상태예요. 한미약품은 GLP-1 계열 비만 약인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고, LG화학과 동아에스티도 각각 비만 약을 개발 중입니다. 비만 치료 외에도 GLP-1은 신장이나 간 같은 여러 장기에서 염증 반응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지방간염 같은 질환에도 GLP-1이 효과가 있는 이유입니다.

비만 환자 완전히 없어질까

비만 치료 약이 나왔으니 뚱뚱한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요. 과학자들은 비만 치료 약만으로는 힘들다고 얘기해요. 비만 약만 먹어선 안 되고 생활 습관도 함께 고쳐야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다는 거죠.

비만 약 외에도 비만 치료에 도움을 주는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답니다. 최근엔 머리에 쓰고만 있어도 식욕을 억제할 수 있는 두건도 개발되고 있어요. 약물을 쓰지 않고 뇌에 전기 자극을 줘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를 자극해 비만을 치료하는 기술이죠. 호르몬을 몸에 투여하는 비만 치료 약과 비슷한 원리랍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