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미사일 공동 개발한 우방국… '이란 혁명' 이후 앙숙으로
입력 : 2024.11.13 03:30
이스라엘·이란 관계
- ▲ 작년 10월 이스라엘 남부 가자지구에서 촬영된 이스라엘군의 모습이에요. /EPA 연합뉴스
지금은 서로 미사일을 겨누고 있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은 사실 사이가 좋았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오늘은 두 나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볼게요.
군사·경제적 협력하던 이란과 이스라엘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인의 조상들은 나라를 잃고 오늘날 이라크에 있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어요. 이후 이란 사람들의 조상인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황제가 바빌론을 정복했는데, 그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가 살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게 이란의 조상인 것이지요.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부터입니다. 석유가 많이 나는 이란과 군사 기술이 뛰어난 이스라엘은 서로 경제적·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협력 관계였답니다.
1968년 두 나라는 공동으로 석유 파이프라인도 건설해요. 홍해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최남단 에일라트 항구에서부터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이스라엘 북부의 아슈켈론 항구까지 송유관을 설치한 거죠. 이스라엘 입장에선 석유 운반 수단이 생기고, 이란 입장에선 비싼 통관료를 내야 하는 수에즈운하 대신 이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유럽으로 석유를 수출할 수 있으니 양측 모두 이득이었죠.
양국은 1970년대 후반엔 장거리 탄도미사일 공동 개발 사업도 벌입니다.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키려 했던 이란은 돈을 대고, 이스라엘은 그 돈으로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고 실험해 기술을 이란에 이전해주는 방식이었어요. '플라워(flower)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사업입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앙숙 관계 됐죠
두 나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예요. 당시 이란에선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며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교 신앙에 기반해 국정을 이끄는 혁명 정부가 들어섰어요.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세계의 연대를 강조하는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를 반대하는 정책을 폈죠.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늘날 중동 정세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부터 이해해야 해요. 세계 곳곳에서 박해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 유대인의 땅인 팔레스타인 시온(예루살렘)에 나라를 세운다는 '시온주의'를 내세우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를 세웠지요.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아랍민족주의를 앞세운 아랍 국가와 시온주의의 이스라엘이 다투게 돼요. 그런데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박해를 받는 이슬람교 신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 갈등을 '이슬람 세계와 이스라엘'의 대립으로 바꾼답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에 독립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는 무장 단체 하마스를 지원했어요. 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반(反)이스라엘 무장 단체 헤즈볼라에도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있죠. 팔레스타인 독립을 돕는 시리아의 친(親)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이슬람저항군, 예멘의 후티반군도 모두 이란이 지원하지요.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이슬람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이란 안팎의 반정부 세력을 돕지요. 이란은 다민족 국가예요. 언어 또한 페르시아어가 국어(國語)이긴 하지만, 국민 약 40%는 쿠르드어, 아제르바이잔어, 아랍어 등을 쓰죠. 이 사람들 중에 이란에서 독립하고 싶은 세력을 이스라엘이 몰래 지원하는 거예요. 이처럼 이란과 이스라엘은 뒤에서 조용히 상대방의 반대 세력을 지원하는 '그림자 전쟁'을 오랫동안 벌이고 있어요.
핵무기 두고 갈등 깊어졌어요
두 나라의 관계는 2002년 이란 반정부 단체의 폭로 때문에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이란 정부가 비밀리에 핵(核)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거예요.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주변 아랍 국가와 전쟁을 한 나라죠. 한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까지 적개심을 드러냈지요. 그런 나라가 핵 개발을 한다니, 이스라엘은 더욱 이란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거죠.
현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핵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어요.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도 지원하는 이란을 가만히 두고서는 이스라엘 안보가 불안하다고 여기지요. 이란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고요. 그래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우려가 나오는 거랍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중동 지역 갈등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예요. 이란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해 국제사회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과 핵 시설 파괴에 따른 오염도 우려했죠.
하지만 이번에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입장이 다릅니다. 이전 대통령 재임 시절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정도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얼마 전 선거 유세 기간엔 이스라엘의 이란 핵 시설 공격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중동 내 살얼음판 같은 긴장 관계는 앞으로도 쉽게 해소되긴 어려울 전망이에요. 이란은 그동안 대량 살상 무기인 핵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평화로운 핵 개발만 하겠다고 했는데, 최근 이스라엘과 공격을 주고받은 후에는 '국가 안보에 필요하면 핵무기를 가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 ▲ 1979년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루홀라 호메이니의 포스터를 든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 ▲ 이스라엘과 인근 중동 국가들이 표시된 지도예요.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부터 아랍 국가들과 갈등을 빚으며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 ▲ 작년 10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 장관과 면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어요. /로이터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