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회초리·소쿠리·싸리비 재료… '싸리' 이름 들어간 식물만 90여 종

입력 : 2024.10.28 03:30

싸리

7~8월에 피는 싸리 꽃은 분홍빛이 도는 보라색이에요. /국립생물자원관·표준국어대사전
7~8월에 피는 싸리 꽃은 분홍빛이 도는 보라색이에요. /국립생물자원관·표준국어대사전
'싸리'라고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나요? 싸리는 가늘면서도 적당한 탄력과 강도를 갖추고 있어 생활 곳곳에서 많이 쓰였어요. 굵은 줄기는 다발로 엮어 울타리와 대문(사립문)을 만들고, 가는 줄기들은 다듬어 발, 회초리, 소쿠리 같은 생활 도구를 만들었답니다. 조금만 산을 오르면 지게 가득 잘라 올 수 있었던 싸리는 말리지 않아도 연기가 나지 않고 화력이 좋아 땔감으로도 요긴했죠. 싸리 낙엽으로는 거름을 만들고, 적당한 굵기의 줄기를 다듬어서 윷놀이에 사용하는 윷을 만들기도 했어요.

싸리는 콩과(科) 싸리속(屬)의 낙엽 활엽 관목입니다. 싸리는 전국 양지바른 산 초입부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뚜렷한 중심 줄기 없이 여러 줄기 다발이 2~3m 높이까지 자라며, 줄기 윗부분은 몇 개의 잔가지로 갈라진답니다.

싸리는 형제도 많아요. 이름에 '싸리'가 들어가는 식물이 90여 종이에요. 조록싸리, 참싸리 등은 싸리와 같은 싸리속 식물이고요. 족제비싸리, 전동싸리 등은 다른 속 식물이에요. 물싸리(장미과), 광대싸리(대극과) 등 싸리와 전혀 다른 과 식물도 있습니다. 댑싸리도 아예 다른 과에 속해요. 그런데 모양이 싸리 가지를 묶어 만든 빗자루인 싸리비<작은 사진>와 닮았고, 또 싸리비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뜻으로 댑(대용)싸리로 불립니다. 옛날 사람들은 줄기가 가늘고 키가 작은 덤불을 보면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싸리에 빗대어 불렀던 거예요.

싸리잎은 보통 3장으로 구성돼 삼출엽(三出葉)이라 불려요. 잎 크기와 모양은 싸리속 식물들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예요. 싸리잎은 동글동글하고, 잎끝이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가운데 잎은 다른 두 장보다 큽니다. 잎자루가 길어 전체적으로 헐렁한 느낌이 있답니다.

분홍빛이 도는 보라색 싸리꽃은 7~8월에 핍니다. 밤꽃마저 지고 난 여름, 자잘한 싸리꽃이 무더기로 피면 수많은 벌 떼가 싸리 주위로 모여듭니다. 이 벌들이 싸리꽃을 포함해 다양한 야생화를 옮겨다니며 모은 꿀이 바로 잡화 꿀이라고 불리는 야생화 꿀이에요.

싸리는 경사진 산비탈, 흙이 무너져 내린 곳, 산불이 난 곳 등 토양이 척박하고 불안정한 곳에서도 잘 자랍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싸리가 속한 콩과 식물의 공생 능력 때문인데요. 콩과 식물의 뿌리혹 속에 살고 있는 세균(박테리아)은 공기 중 질소를 이용해 식물에게 정말 중요한 영양분을 만들어 줍니다. 식물은 그 대가로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이 공생균에게 주죠. 공생균이 싸리에게 준 풍부한 질소 영양분은 낙엽에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인근 토양을 빠른 시간에 비옥하게 만듭니다.

도시에서는 싸리를 보긴 어렵지만, 요즘 같은 가을에 근교로 드라이브를 떠난다면 창문 밖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은 곳에 종종 싸리가 자라고 있어요. 노랗게 물들어 가는 싸리 잎과 쌀알처럼 떨어진 싸리 꽃을 볼 수 있답니다.
[식물 이야기] 회초리·소쿠리·싸리비 재료… '싸리' 이름 들어간 식물만 90여 종
차윤정 산림생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