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탑에 갇힌 라푼젤이 전당포 주인으로? 현대로 온 동화 속 주인공들의 변신

입력 : 2024.10.28 03:30
[재밌다, 이 책!] 탑에 갇힌 라푼젤이 전당포 주인으로? 현대로 온 동화 속 주인공들의 변신
바리는 로봇이다

강성은 외 7인 지음|출판사 안온북스|가격 1만5000원

'바리데기' 설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설화는 딸만 일곱인 왕이 일곱째 딸 바리데기를 버리면서 시작됩니다. 바리데기는 버림받았지만 훗날 아버지가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을 구하기 위해 험난한 모험을 떠나죠.

오늘날 바리데기 이야기가 다시 쓰인다면 어떨까요? 이 소설집 속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좀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바리데기, 인어공주, 라푼젤 같은 옛이야기들이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다시 쓰였답니다.

박서련 작가의 '바리는 로봇이다'는 바리데기 설화를 SF 소설로 재해석한 작품이에요. 재탄생한 '바리'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험난한 모험을 떠나는 효녀가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로봇이랍니다. 로봇 바리는 한 배우의 15세 때 모습을 본떠 만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제작을 의뢰한 배우는 바리가 열다섯 살 때 자신보다 못생겼다며 버리라고 하죠. 애써 바리를 제작한 박사들은 할 수 없이 바리를 박물관에 맡기려 했어요. 버림받은 바리는 자신이 어딘가 고장 난 로봇일 거라며 슬퍼합니다.

바리는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결국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크게 좌절하죠. 그리곤 왜 자신을 버렸는지 이유를 묻기 위해서 자신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한 배우를 찾아 나서게 돼요. 이 작품은 로봇 바리를 통해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부모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바리데기 설화와는 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답니다.

조예은 작가의 '탑 안의 여자들'은 우리가 아는 라푼젤 이야기를 재해석한 작품이에요. 원작의 라푼젤은 마녀에 의해 탑에 갇히고 왕자를 기다려요. 하지만 이 작품에선 왕자가 등장하지 않는답니다.

이 작품에선 라푼젤이 마치 '마녀' 같은 인물로 나와요. 라푼젤은 도박 중독자들에게 담보를 받아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 주인입니다. 이 때문에 '슬롯의 마녀'로 불리죠. 그런데 라푼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남자들이 끝도 없이 스토킹을 하고 집착을 해요. 결국 그는 10층짜리 탑을 짓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갑니다.

라푼젤의 삶을 바꾸는 것은 왕자가 아닌 한 소녀였습니다. 어느 날 라푼젤 앞에 나타난 한 남자는 어린 딸을 담보로 맡기고 사라져요. 라푼젤은 소녀를 정성껏 돌봤어요. 어느덧 성인이 된 소녀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혼자 남겨진 라푼젤은 소녀를 그리워하다 지쳐 갑니다.

기다림 끝에 소녀는 다시 탑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소녀가 나이 들어 연약해진 라푼젤을 돌봐요. 소설은 탑이라는 억압된 공간에서 여성들이 연대해 길을 찾으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요.

책에는 이 외에도 소설가들이 새롭게 해석한 옛이야기 여섯 편이 더 수록돼 있어요. 여러분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길 바랍니다.


김미향 출판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