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가족은 늘 함께해야' 이상적 가치관, 폭력적인 다섯째 때문에 흔들렸죠

입력 : 2024.10.22 03:30

다섯째 아이

1988년 출판된 '다섯째 아이' 초판본 표지. /위키피디아
1988년 출판된 '다섯째 아이' 초판본 표지. /위키피디아
최근 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아 세계적인 화제가 됐어요. 이 책의 저자 도리스 레싱은 20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역대 최고령(88세) 수상 기록을 세웠던 인물이랍니다. 영국 작가인 레싱은 사회 제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사회성 짙은 작품 세계를 보여줬어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0~1970년대 서구 사회는 가족 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선택과 삶을 중시하는 자유로운 가치관이 퍼졌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소설의 중심 인물인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데이비드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꿈꿨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해리엇 역시 인생에서 행복한 가정 생활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자녀를 많이 낳은 뒤 잘 기르는 것이 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답니다. 둘은 넷째 자녀까지 얻으며 꿈꿔왔던 가정을 이뤄가는 듯 보였죠.

불행이 찾아온 것은 해리엇이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였습니다. 다섯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배 속에서부터 거칠게 움직였어요. 해리엇은 자신이 '괴물을 임신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죠. 다섯째 '벤'은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훨씬 컸어요. 남다른 힘을 가진 벤은 성장할수록 공격적인 행동을 하며 가족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가족들을 위협했어요. 통제 불능 벤 때문에 가족이 무너지는 것을 참을 수 없던 데이비드는 벤을 요양소로 보냅니다. 벤이 사라지자 가족들은 잠시나마 예전의 화목함을 되찾죠.

하지만 해리엇은 행복한 가정이 완성되려면 가족이 모여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결국 요양소에서 벤을 데려옵니다. 해리엇은 벤의 행동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벤의 존재로 인해 가족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해리엇은 자신의 신념과 벤을 두려워하는 다른 가족들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어요.

결국 해리엇과 데이비드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소설은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던 벤이 집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요. 도리스 레싱은 2000년에 후속작 'Ben, in the world(세상 속의 벤)'를 출간했는데, 여기에 집을 떠난 벤의 삶이 그려져 있답니다.

소설은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실제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비판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내 가치관이 옳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낀 순간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가치관을 과감히 버리거나 바꾸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저자는 해리엇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보여줘요. 애써 현실을 무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무의미함을 깨닫는 거예요.


배혜림 창원 창북중 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