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철의 여인' '엄마 리더십'… 시대 이끈 여성 지도자 있었죠
입력 : 2024.10.16 03:30
여성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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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치러진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당시 후보가 당선을 확정지은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어요. 셰인바움은 멕시코 최초 여성 대통령이에요. /게티이미지코리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여성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셰인바움과 어떤 정책 협력을 할지도 관심이 모이고 있어요. 미국과 멕시코는 3000㎞ 이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요. 두 나라는 이민자 문제를 두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답니다. 오늘은 세계 여성 지도자들의 활약을 살펴볼게요.
강경한 리더십으로 '철의 여인' 별명 얻었죠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여성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영국 최초 여성 보수당 대표였던 마거릿 대처를 꼽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대처는 11년이나 총리를 지냈는데요, 그의 정치 철학은 '대처리즘'이라고도 불린답니다.
대처가 영국 총리에 오른 것은 1979년이에요. 1970년대 영국은 경제 성장은 더디고 실업자들은 늘어난 상황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도 극심했는데,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을 정도였어요. 1970년대 말엔 각 분야 노동조합들이 연합해서 파업을 벌여 국민들은 일상생활에서 큰 고통을 겪었어요. 거리엔 쓰레기가 쌓여가고, 심지어 시신을 묻을 매장인조차 구할 수 없었대요. 이런 상황에서 실시된 총선거에서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를 거뒀고, 대처는 총리가 됩니다.
대처는 이전과 다른 경제 정책을 추진했어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다시 짰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줄였고요. 각종 규제를 완화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공기업은 민영화를 추진했답니다. 과도한 규제로 인해 경제 성장이 더딜 뿐 아니라, 국가가 많은 산업과 기업을 관리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봤던 거예요. 이 외에도 대처는 여러 사회 제도를 큰 폭으로 수정했어요. 법과 질서를 강조했던 대처는 노동조합이 가졌던 특권을 줄이고, 경찰의 권한도 늘렸답니다. 대외적으론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을 펼치기도 하죠. 대처는 이런 강경한 리더십 덕분에 '철의 여인(Iron Lady)'이란 별명도 얻어요.
총리직을 맡는 동안 대처의 인기는 매우 높았어요. 영국의 시장경제를 살려냈다는 평가도 받는답니다. 하지만 그의 강경한 리더십에 불만을 품은 국민도 많았어요. 1980년대 말 영국 경제가 다시 불황에 빠지면서 대처는 점차 인기를 잃었고, 결국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나게 된답니다.
좌·우파 모두 기용하며 난민 포용 정책 폈어요
영국에 대처가 있었다면, 독일엔 '무티'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있었어요. 무티(Mutti) 는 독일어로 '엄마'를 뜻하는데요. 그의 정치 스타일이 어머니처럼 안정적이면서도 강인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죠.
동독의 물리학자였던 메르켈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서독으로 건너가 정치에 발을 들였어요. 헬무트 콜이 이끌던 기민당에 입당해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하죠. 하원 의원과 환경부 장관 등을 맡은 그는 2005년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가 됩니다.
서독 출신들이 주도하는 독일 정치권에서 동독 출신 메르켈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체제 밖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외부인'이라고 생각한 거죠. 이런 생각 덕분인지 그녀는 정책을 결정할 때 특정 정치 세력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답니다.
포용과 중재에 능한 메르켈은 16년을 집권했는데도 퇴임 직전 지지율이 70%를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어요. 글로벌 금융 위기, 남유럽 재정 위기, 대규모 난민 이주 사태 등 위기 앞에서 EU(유럽연합)의 단합을 이끌며 '유럽의 여제(女帝)'라고 불리기도 했죠. 그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했는데도 100만명 넘는 난민을 받아들여요. 그의 이런 인도주의는 한편에선 칭찬받았지만, 유럽 곳곳의 난민 위기를 불러왔다며 비난을 받기도 했어요.
미얀마 민주화 영웅… '선택적 침묵' 비판도
민주화에 앞장선 여성 지도자도 있답니다. 미얀마의 전 국가고문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이야기예요.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독립운동 지도자 아웅산 장군의 딸로, 영국에서 생활하다 1988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당시 미얀마 수도 양곤에선 군부 정권에 맞선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한 달 넘게 이어진 시위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고국의 참혹한 모습을 본 아웅산 수지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만들어 민주화 운동에 나섭니다. 아웅산 수지는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웁니다. 이 때문에 아웅산 수지는 군부로부터 6년간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어요. 아웅산 수지는 민주화 공로로 1991년엔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어오던 아웅산 수지는 2016년 미얀마의 정치 환경이 바뀌며 국가고문과 외무부 장관에 올랐는데요. 막상 국정 운영을 맡은 다음엔 자신의 정치적 지지 세력을 의식해 미얀마의 소수 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국가 탄압엔 선택적으로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았어요. 현재 그는 군부가 다시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 구금된 상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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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가 보수당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어요. ‘작은 정부’를 추구했던 대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정책을 펼쳤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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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어요. 메르켈은 세계 경제 위기나 대규모 난민 이주 사태 속에서도 유럽의 단합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요.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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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아웅산 수지. 그는 1991년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군부 정권에 의해 구금을 당해 뒤늦게 소감을 발표한 거예요.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