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사람들 무관심 속 이름조차 희미해진 V양… 죽은 뒤에야 타인의 눈길 끌 수 있었죠
입력 : 2024.09.23 03:30
불가사의한 V양 사건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의 고독한 삶과 죽음을 섬세하게 탐구한 단편소설이에요. 주인공은 대도시 런던에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자매입니다. 화자는 두 사람을 통틀어 'V양'이라고 불러요. V양은 이름으로 불리지 못할 만큼 타인의 관심과 기억에서 희미해진 것이지요.
V양은 사교 모임 등에 종종 나타나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지만, 사람들에겐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가구 같은 존재예요. 화자도 어쩌다 V양을 만나면 정해진 대화만 할 뿐,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그렇게 V양은 투명 인간처럼 살다가 어느 날 조용히 사라져요. 화자는 말합니다. 시골에서라면 푸줏간 주인이나 우편배달부나 교구 목사의 아내가 V양의 죽음을 알았을 거라고요. 그렇지만 도시에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최소한으로 축소된다고요.
다들 한시도 낭비하면 안 된다며 서두르다 보니 푸줏간 주인은 부엌문 앞에 던져 놓은 고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도 눈치채지 못하고, 우편배달부는 우편함에 밀어 넣은 편지가 읽히지 않아도 알 리가 없어요. 교구 목사의 아내 역시 자매의 집에 던져 넣은 교구 소식지에 적힌 목사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도 알지 못하지요. 그러면서 V양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벗어나는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아요.
V양은 삶이 끝나고 나서야 관심을 받게 됩니다. 어느 날 화자가 V양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지요.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사람들 간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정서적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V양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고독과 타인의 무관심을 비판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에서 "이 이야기는 런던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서울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누구나 V양이 될 수 있다는 걸요.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바쁜 일상으로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며 그냥 지나친 건 아닌가요? 이 책을 읽고 나면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단절이 당연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될 거예요.
이 책은 고정순 그림책 작가가 삽화를 그렸어요. 고 작가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소설을 해석해 그린 그림들은 독자가 이야기를 더욱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