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조선 시대 양반집 서자로 태어나 신분 차별 극복하고 왕실 화가 됐죠
입력 : 2024.09.05 03:30
황금 소나무를 그린 이징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검은색 비단 위에 찬란한 금으로 산수를 그린 조선 시대 그림을 만날 수 있어요. 절벽 위에는 커다란 소나무, 절벽 끝에는 누각이 그려져 있지요. 구름에 싸인 산봉우리들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몽환적인 모습이에요.
이 작품 이름은 '이금산수도'예요. '이금으로 산과 물을 그렸다'라는 의미지요. 이금(泥金)은 매우 고운 금가루를 아교풀에 개어 만든 안료예요. 금색 물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탕을 검은색과 같이 어두운 색으로 하는 것도 이런 작품들의 특징이에요.
그림에는 누가 그렸는지 표시한 관서나 인장이 없지만, 이징(1581~미상)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징만큼 이금산수도를 잘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값비싼 비단 위에 금으로 만든 안료를 사용해 그려야 했기 때문에 실수 없이 단 한 번의 붓질로 그림을 완성해야 해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조선 시대엔 신분에 따라 금을 사용하는 게 제한됐어요. 왕실은 금을 사용할 수 있었죠. 이징이 왕실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이징의 이금산수도는 정교한 필치와 세련된 기교로 조선 시대 궁중 예술의 수준을 높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이징은 16세기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이경윤의 서자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어머니가 노비였다고 해요. 조선 시대엔 신분에 따른 차별이 심했어요.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서자로 태어난 이상 출세하기는 힘들었죠.
하지만 저자는 이징이 신분제 차별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혹독한 연습과 노력으로 왕실이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징이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암울하고 상처투성이가 된 조선에 그림으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노력한 인물로 이징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현직 국어 교사인 저자는 이징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말을 겁니다. 힘들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만나도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조선 시대 화가를 떠올리면 신윤복이나 김홍도가 먼저 생각날 텐데요. 이 책을 통해 전쟁의 혼란과 신분 차별에도 흔들리지 않고 꿈을 이룬 화가 이징이 청소년들에게 알려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