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중국에 내린 '천년 만의 폭우' 달팽이 껍데기에 흔적 남겼죠

입력 : 2024.08.27 03:30

자연에 남은 과거 기후 흔적

/그래픽=진봉기
/그래픽=진봉기
부산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9일까지 26일 연속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어요. 서울은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23일까지 34일 연속으로 열대야가 이어졌지요. 두 지역 모두 1900년대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역대 최장 연속 열대야 일수를 기록했다고 해요. 이처럼 무더운 올해 여름 날씨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지겠죠.

그런데 과학자들은 자연에 남은 흔적에서 과거 기후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대요.

달팽이와 폭우

중국 시안자오퉁대의 지구환경변화연구소 옌훙 교수팀은 달팽이 껍데기에 주목했어요. 달팽이는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어요. 몸이 커질 때마다 껍데기도 커지는데, 한번 만들어진 껍데기는 성질이 변하지 않죠. 연구진은 껍데기에 당시 기후 환경을 추측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2021년 7월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는 폭우가 내렸는데요. 당시 사흘간 연평균 강수량에 버금가는 617.1㎜의 비가 쏟아져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어요. 중국에선 '천 년 만의 폭우'라는 말도 나왔다고 해요.

연구진은 이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기 전인 6월과 폭우가 끝난 후인 9월, 12월에 각각 잡은 달팽이 껍데기를 분석했어요. 그 결과 달팽이 껍데기에서 폭우의 흔적을 발견해 그 내용을 지난달 한 과학 전문 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달팽이 껍데기는 산소와 탄소, 칼슘 원자로 이뤄진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져요. 이 중 산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질량수(양성자 수와 중성자 수의 합)가 달라요. 산소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되는데, 중성자 수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중성자 수는 다르지만, 양성자 수는 같아서 원자 번호가 같고 화학적 성질도 같은 것을 동위원소라고 해요. 자연에는 질량수가 16인 '산소-16'과 질량수가 17인 '산소-17', 18인 '산소-18'이 섞여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조사하면 과거 기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온이 올라가면 질량수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소-16이 산소-18보다 빨리 증발해요. 그러면 지상에 있는 물에는 산소-18이 많이 남게 됩니다. 반대로 비가 많이 오면 수증기가 잘 증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상의 물에 산소-16도 많이 남아있게 됩니다.

생물은 지상에 있는 물을 섭취하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달팽이도 물을 마시죠. 달팽이가 마신 물에 들어 있던 산소는 껍데기를 만드는 데 쓰여서 그대로 남게 되죠. 껍데기에 남아 있는 산소-16과 산소-18의 비율을 확인하면 달팽이가 물을 마실 당시 기후가 습했는지 더웠는지 등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구진이 분석한 달팽이 껍데기 속 산소-16과 산소-18의 비율은 어땠을까요? 연구진이 폭우가 내리기 전인 6월에 잡은 달팽이의 껍데기에는 산소-18이 많이 들어있었어요. 하지만 폭우가 내린 뒤인 9월과 12월에 잡은 달팽이에는 산소-16이 많이 들어있었답니다.

종유석·빙하·꽃가루에도 과거 기후 흔적 남아

석회동굴에서 볼 수 있는 종유석을 통해선 더 머나먼 과거의 기후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해요. 종유석은 동굴 천장에 고드름같이 달려 있는 탄산칼슘 덩어리를 말해요. 동굴 천장에서 지하수가 떨어지는데, 지하수에 녹아 있던 탄산칼슘 성분이 시간이 지나며 천장에 축적되면서 층층이 쌓이고 기둥처럼 커지는 것이지요.

탄산칼슘층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겹겹이 쌓이는데요. 그런 만큼 각 층에 들어 있는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해 당시 기후를 추측할 수 있답니다.

빙하를 통해서도 과거 기후를 살펴볼 수 있어요. 눈이 계속 내리면 눈과 눈 사이 빈 공간에 공기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백에서 수천 년 동안 쌓인 눈이 얼음덩어리로 변한 빙하에는 미세한 공기 방울들이 무척 많이 있어요. 남극대륙의 빙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극 빙하 중에서 80만년 전 형성된 공기 방울을 갖고 있는 것도 발견됐어요. 이처럼 남극 곳곳의 빙하를 통해 과학자들은 현재부터 80만년 전까지 남극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추정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산화탄소는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기체인 만큼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토대로 과거 기후 변화와 특징을 살펴보고 있어요.

식물 번식을 책임지는 꽃가루도 과거 기후를 알려주는 단서입니다. 꽃가루는 식물마다 형태가 다릅니다. 번식 방법에 따라 바람에 잘 날아가는 모양도 있고 곤충 다리에 잘 달라붙는 표면을 가진 것도 있죠. 꽃가루 모양에 당시 환경이 반영된 거예요. 그래서 호수나 늪지 퇴적물에 화석으로 남은 꽃가루를 조사하면 당시 해당 지역이 추워서 침엽수가 많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혹 엄청나게 작은 크기의 꽃가루가 그 형태 그대로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어요. 꽃이 번식하려면 꽃가루가 다른 꽃이나 암술까지 안전하게 이동해야 해요. 그래서 꽃가루 표면은 스포로폴레닌이라는 단단한 단백질로 덮여 있어요. 그 덕분에 고온·고압 등 극한의 상황에서도 형태를 잃지 않고 화석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답니다.

오가희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