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높은 산에 피는 닻처럼 생긴 꽃…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죠
입력 : 2024.08.19 03:30
참닻꽃
- ▲ 참닻꽃에 꽃이 핀 모습. 꽃 모양이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고정하는 닻을 닮았어요. /김민철 기자
이맘때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인 화악산에 가면 가느다란 줄기에 올망졸망한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꽃을 하나하나 보면 날카로운 갈고리를 4개씩 매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꽃 모양이 영락없이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고정하는 닻 모양입니다. 그래서 꽃 이름이 참닻꽃이에요. 참 희한하게 생겼죠? 닻을 닮은 꽃이 왜 바닷가에 피지 않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는지도 궁금합니다.
네 갈고리 같은 형태를 '거(距·꽃뿔)'라고 하는데 대개 꿀샘 역할을 합니다. 꽃의 '거'가 긴 것은 매개 곤충이 꿀을 먹을 때 시간이 걸리게 하려는 장치입니다. 식물 처지에서 곤충이 꽃에 오래 머물수록 꽃가루를 옮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한 식물이 적지 않습니다. 제비꽃도 꽃뿔이 길고 물봉선·삼지구엽초·매발톱도 긴 꽃뿔을 갖고 있는 대표적 식물입니다.
참닻꽃은 용담과 닻꽃속에 속하는 한두해살이 식물입니다. 처음에는 연한 녹색이 도는 노란색으로 피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붉은빛을 띤 다음 열매를 맺습니다.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입니다. 원래 참닻꽃 이름은 그냥 닻꽃이었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러시아, 몽골, 중국, 일본에도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유전자 분석 결과, 국내 자생 닻꽃은 중국·일본 등에서 자라는 닻꽃과 좀 다른 것으로 밝혀져 신종으로 등록되면서 이름도 '참닻꽃(Halenia coreana)'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전자뿐 아니라 닻꽃보다 꽃뿔이 더 길고 좁으며 안으로 굽는 점 등 겉모습도 다르다고 합니다.
참닻꽃은 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인 귀한 꽃입니다. 그동안 알려진 국내의 자생지도 1400m 이상 고산지대인 화악산 등 10곳 미만이었지만 몇몇 곳에선 아무리 샅샅이 찾아도 이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참닻꽃이 귀한 것은 기후변화와 환경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숲 가장자리 햇빛이 잘 드는 습한 풀밭에서 사는데, 이런 곳이 점차 줄어들면서 꽃도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추운 곳이 고향인 북방계 식물이라 너무 따뜻해져도, 햇빛이 줄어들거나 주변에 다른 풀이 너무 무성해져도 살기 어렵다고 하니 서식 환경이 까다로운 식물이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이 식물은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은 어느 해 여건이 좋지 않아 씨앗을 잘 맺지 못하더라도 뿌리가 살아 있으므로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해살이풀은 개화·결실·발아 중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문제가 생기면 이듬해 볼 수 없습니다. 이 독특하면서도 예쁜 꽃이 사라지지 않도록 다양한 보전 노력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