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모비 딕' 작가가 쓴 월가 배경 소설… 자본주의 세계서 소외된 인물 다뤘죠
입력 : 2024.08.13 03:30
필경사 바틀비
- ▲ 허먼 멜빌 초상화. /브리태니커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1853년 미국의 한 잡지에 두 차례에 걸쳐 연재된 작품이에요. '모비 딕'으로도 유명한 멜빌은 에드거 앨런 포, 너새니얼 호손과 함께 미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필경사 바틀비'는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의 병폐가 심해지자 재조명됐어요.
이 책의 부제는 '월가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부와 명예가 제일 중요한 삶의 조건이 되는 미국 월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요. 화자인 '나'는 월가에서 제법 잘나가는 변호사예요. 그의 사무실에는 필경사 두 명과 잡일을 하는 직원 한 명이 일하고 있었어요. 필경사란 컴퓨터나 복사기가 없던 시절 글을 베껴 쓰는 등 서류 작업을 돕는 사람이에요. 변호사는 사무실 일이 많이 늘어나자 새로운 필경사 한 사람을 더 채용했어요.
새로 채용된 필경사의 이름은 바틀비. 처음에는 많은 양의 문서를 뚝딱 해치울 정도로 일을 잘했어요. 그런 바틀비가 하루는 함께 서류를 검토하자는 '나'의 말에 "저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질책해도 바틀비의 대답은 똑같았어요. "저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서류 처리 능력이 좋은 바틀비를 내쫓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녀석은 내게 유용해. 난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후 바틀비의 업무 거부는 더 심해졌고, 더 이상 서류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이유를 묻는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지금은 대답을 안 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혼자 있고 싶습니다" 같은 말들뿐이었어요.
바틀비의 행동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변호사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았어요. 바틀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전히 옛날 사무실에 남아 있던 바틀비를 누군가 부랑자로 신고했고, 결국 교도소에 갇히고 말았어요. '나'는 교도소로 찾아가 사식도 넣어주었지만, 바틀비는 끝내 음식을 거부하고 굶어 죽고 말아요.
'나'는 나중에야 바틀비가 필경사로 일하기 전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해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리고 받는 사람이 없는 우편물을 태우는, 무의미하고 수동적인 일을 하며 느꼈을 바틀비의 허무함을 깨달아요.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명확하게 알려주진 않아요. 독자는 계속 '바틀비는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거부하는 바틀비의 소극적 저항은 의문 없이 자본주의 사회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