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같은 '차모로족' 뿌리… 美·스페인 전쟁 후 운명 달라졌죠
입력 : 2024.07.31 03:30
괌과 사이판
- ▲ 차모로족 전통 의상 등을 입은 사람들. /위키피디아
괌은 마리아나 제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에요. 괌의 북쪽엔 섬 14개가 줄지어 있는데요. 이 섬들을 묶어 북마리아나 제도라고 불러요. 그중 주도(主都)가 사이판입니다. 즉, 북마리아나 제도에 괌을 더하면 마리아나 제도가 되는 거예요. 마리아나 제도의 역사는 고대 원주민의 정착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전개됐습니다. 태평양 서부에 있어 해상 교통로와 군사 기지로서 가치가 컸기 때문에 열강의 침략을 많이 받았어요.
수백 년간 스페인 지배 받은 괌
괌의 역사는 차모로족이 기원전 2000 ~3000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건너오면서 시작됐습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일주 도중 괌에 도착했고, 이후 유럽에 괌을 비롯한 태평양 섬들이 알려지게 됐어요. 그리고 1565년 스페인이 괌을 포함한 마리아나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선포했답니다.
1660년대 후반부터는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들이 상륙해 종교를 전파했어요. 차모로족에게 스페인어와 문화도 가르쳤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날에도 괌 시민의 대다수가 가톨릭교이며, 지명이나 건축물 등에 스페인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마리아나 제도라는 이름 역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부인 '마리아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이후 스페인은 마리아나 제도 주민들의 저항과 반란을 진압하고 마리아나 제도를 완전히 '스페인령 동인도'로 편입했어요. 전쟁과 학살, 유럽인들로 인해 퍼진 각종 전염병 때문에 원주민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고 해요.
괌은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수백 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어요. 미국·스페인 전쟁(1898) 중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인 필리핀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중간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괌에 상륙했어요. 전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났는데요. 그 결과 스페인은 괌을 비롯해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등을 미국에 양도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잠시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1950년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는 지역이었어요. 그러다 1950년 미국 의회가 괌 조직법을 통과시키고 원주민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했고, 괌 자치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해줬어요.
사이판이 독일로 넘어간 이유는?
북마리아나 제도에 속한 사이판 역시 차모로족이 정착하면서 역사가 시작됐어요. 이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 활동을 하며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라테스톤'이라는 거석(巨石)문화가 북마리아나 제도와 괌에 발달했지요. 라테스톤은 주로 건축물의 기둥으로 사용됐어요. 이는 차모로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에요.
사이판도 19세기 말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어요. 하지만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부터 괌과 사이판의 운명이 달라져요.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이 1899년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북마리아나 제도를 독일에 매각하면서 주인이 독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일본은 북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해 독일이 태평양에서 지배했던 식민지들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후 처리를 위해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1919)으로 북마리아나 제도 등이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어요.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일본은 이곳에서 사탕수수 등을 재배했고,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연합군이 사이판 등을 탈환했고, 이후 사이판 등 북마리아나 제도는 연합군의 기지로 이용됐어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엔은 북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한 태평양 섬들을 미국의 신탁통치 아래에 뒀어요. 1970년대 중반 북마리아나 제도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독립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신탁통치가 끝나면서 사이판을 비롯한 북마리아나 제도는 국방과 외교는 미국이 관장하고, 그 외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자치 정부를 구성해요.
두 섬은 미국 50주에 포함 안 돼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조상을 뿌리로 두고 있기에 현재 따로 운영되는 게 의아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전쟁을 거치며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갖게 됐고, 경제적·문화적 차이가 생기면서 각 섬의 주민들이 굳이 합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돼요.
미국은 50주와 1개의 특별행정구로 이뤄진 연방 국가예요.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는 미국의 영토이긴 하지만 50개 주에는 속하지 않는 '미국령'에 해당돼요.
미국령에서 태어난 주민들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자동으로 미국 시민 자격을 부여받아요. 하지만 미국 대통령과 상·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투표권은 없습니다. 또 미국령에 대한 안보는 미국 연방 정부가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외국으로부터 미국령이 공격받으면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돼 있지요. 미국 연방 정부는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의 외교와 국방, 이민(출입국 관리) 업무를 관장한다고 해요.
- ▲ 사이판 남쪽 해안의 오비얀 비치. /마리아나관광청
- ▲ 차모로족의 독특한 거석(巨石) 문화인 라테스톤. 라테스톤은 주로 건축물의 기둥으로 사용됐어요. /괌정부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