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편의점서 만난 천태만상 사람들 이야기… 난 어떤 손님으로 기억될지 생각해봐요
입력 : 2024.07.25 03:30
편의점 재영씨
우리나라에는 편의점이 무척 흔해요.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5만52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전 세계 맥도널드 매장 수보다 2만여 개 더 많은 수치라고 해요. 우리가 편의점을 유독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가 있었네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가도 편의점의 밝은 불빛을 보면 안심이 되죠. 1인 가구 증가와 도시의 인구 밀집을 배경으로 크게 성장한 편의점은 이제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간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6년 동안 서울 이태원과 천안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직접 보고 겪고 느낀 일들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잠깐씩 머무는 손님의 시각에선 볼 수 없었던 온갖 일을 전해줘요. 편의점이라는 작은 렌즈로 21세기 한국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관찰할 수 있어요.
저자가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론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론 무례한 손님들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해요. 하지만 저자는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불편한 일도 유쾌한 문장으로 승화시켜요. 이렇게 말이지요. "애기 엄마는 비닐봉지에 담겨 있던 과자 봉지와 함께 그 사골육수를 재영씨를 향해 던졌다. 쇄골 언저리에 부딪혀 떨어진 사골육수를 바닥에서 집어 다시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 재영씨는 폐기 처리한 사골육수가 버리기 아까워 그것으로 떡국을 끓였다. 떡을 넣고 나니 잠시 후 부글부글 끓기 시작해 간을 봤다. 떡국 육수에서 쇄골 맛이 났다."
저자가 보여주는 편의점 안 풍경은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에요. 개구리 군복을 입고 매일 담배를 두 갑씩 사는 손님이 있는데, 군인 같은 말투와 행동을 하는 그에게 저자는 '김 병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요. 그런데 '김 병장'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절할 만큼 놀랐던 또 다른 단골손님 '볼 빨간 아주머니'는 결국 김 병장과 절친이 됩니다.
'일용엄니' '호빵맨' '참새와 할미꽃'…. 모두 손님들 별명이에요. 저자는 단골들의 특징을 잡아내 이렇게 별명으로 기억해 둬요. 그들이 주로 구입하는 품목이 뭔지, 어떤 크기의 봉지를 선호하는지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배려하기 위해서예요. 손님들을 도와 사소한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친해지죠. '꽃보다 할매' 3인방은 편의점에 올 때마다 반찬이나 떡을 가져다줘요. 이 정도면 그냥 손님과 점원의 관계라기보다는 친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가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지만 미처 자세히 알지 못했던 편의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편의점 점원이 볼 때 어떤 특징을 가진 손님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