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바쁘고 조급히 움직이는 현대 사회서 사라져가는 여유·장인 정신 일깨워요
입력 : 2024.07.23 03:30
곶감과 수필
윤오영(1907~1976)은 보성고등학교에서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50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물입니다. '곶감과 수필'은 그런 윤오영의 글 54편을 담은 책인데요. 오늘은 이 책에 실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방망이 깎던 노인'을 소개할게요.
이 작품은 무뚝뚝한 모습으로 방망이를 깎는 노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돼요. 주인공은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방망이를 주문했는데, 오랫동안 방망이를 만드는 노인의 느릿한 태도에 무척 짜증이 났어요. 주인공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아내가 방망이를 보고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에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노인이 방망이 만드는 것에 신중함을 기울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주인공이 이제 그만 방망이 달라고 보채자 노인이 화를 내며 한 말입니다. 노인의 말처럼, 아무리 재촉한다고 해도 생쌀이 바로 밥이 되지 않고, 설익은 밥보다 충분히 뜸이 든 밥이 훨씬 맛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들고, 힘듦과 지루함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지요.
이런 주인공의 깨달음은 독자로 하여금 바쁜 현대사회를 살면서 잊고 지내던 장인 정신과 삶의 여유를 다시 생각하게 해줘요. 또 성격 급한 주인공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성을 들여 일을 해내는 노인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게 좋은지 고민해보게 합니다. 1970년대에 발표됐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에요. 국어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수록됐어요.
여러분도 "빨리빨리"를 외치며 조급한 하루를 보낸 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작품을 읽고 우리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어요. 방망이 한 자루에 최선을 다하는 노인처럼, 온 정성을 기울여 노력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해요.
이 책을 엮은 국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는 윤오영 수필은 문체가 간결하고 함축과 여운이 대단하다고 평가했어요. 또 글의 소재를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서 찾았지만,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이를 바라본다고 했지요.
이처럼 윤오영의 글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관한 남다른 관찰과 사유를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해줘요. 방망이 깎는 노인 외에도 '참새' '온돌의 정' '마고자' '백사장의 하루' 등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며 윤오영 수필의 맛을 한번 느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