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19세기 사라졌던 악기 되살려 다채로운 음악 들려줘요

입력 : 2024.07.15 03:30

시대 악기·시대 연주

영국 고음악 연주 단체인 ‘잉글리시 콘서트’는 옛 건반 악기인 하프시코드(가운데) 등을 복원해서 연주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지요. /잉글리시 콘서트
영국 고음악 연주 단체인 ‘잉글리시 콘서트’는 옛 건반 악기인 하프시코드(가운데) 등을 복원해서 연주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지요. /잉글리시 콘서트
바흐와 헨델 같은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에 가면 간혹 낯선 악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전신(前身)에 해당하는 하프시코드나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리코더를 연주하고요. 기타를 닮은 옛 악기인 류트와 테오르보가 무대에 등장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작곡가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 악기와 연주법을 되살리는 방식을 '시대 악기(period instrument)'나 '시대 연주'라고 부릅니다. 고음악이나 원전 연주, 당대 연주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연주'라고도 하지요. 명칭은 다소 복잡하지만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묘미가 있지요.

지난달에도 프랑스 지휘자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고음악 전문 연주 단체인 '루브르의 음악가들(Les Musiciens du Louvre)'이 내한해서 모차르트의 교향곡·협주곡들을 시대 악기로 연주했어요. 올가을에도 영국 지휘자 존 엘리엇 가드너가 자신이 창단한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한해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을 시대 연주 방식으로 들려줄 예정입니다. 고음악 열풍이 한국에도 불어닥친 셈입니다. 과연 시대 악기는 오늘날 어떻게 부활한 것일까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악기들

악기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악기들이 퇴장하고 새로운 악기들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같은 악기라고 해도 재질이나 연주법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피아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대식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악기 뚜껑 안에 있는 해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타현(打絃) 악기'입니다.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의 줄임말인 피아노는 이름처럼 '여리게(piano)'부터 '강하게(forte)'까지 강약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요. 이 때문에 화려하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의 대명사로 꼽혀요.

하지만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피아노는 하프시코드·쳄발로·클라브생 등으로 이름부터 달랐습니다.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눌러서 소리를 내는 점은 같지만 기타의 피크를 닮은 장치가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발현(撥絃) 악기'입니다. 강약 조절은 불가능하지만 찰랑거리는 듯한 우아한 음색을 내지요. 리코더도 지금은 값싼 플라스틱 재질의 '교육용 악기'로만 알려져 있지만,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궁정에서 사랑받았던 목관 악기였습니다.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 역시 적잖은 리코더 협주곡을 남겼지요.

악기 모양이나 재질이 달라진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날과 달리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이나 호른은 관의 길이를 조절해서 음높이를 바꾸는 장치인 밸브(valve)가 없어서 생김새부터 무척 투박했지요.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들도 지금은 금속 현(絃)을 쓰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거트(gut)현을 사용해서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를 냅니다. 이렇듯 시대 악기는 음악의 역사학이자 고고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요.

유럽에서 악기들의 개량과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난 건 19세기 무렵입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궁정이나 살롱, 교회나 성당에서 세속 음악과 종교 음악을 연주했지요. 하지만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을 떠나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들이 속속 들어섰지요.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어아인(187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1888년) 등이 이 시기에 개관한 대표적인 공연장들입니다. 공연장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큰 음량을 빠르고 손쉽게 낼 수 있도록 악기도 개량을 거듭했고, 오케스트라 규모도 오늘날처럼 최대 100여 명까지 커졌지요.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바로크 시대 작품이나 악기, 연주법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바흐와 헨델의 작품들과 비발디의 '사계' 같은 몇몇 인기곡을 제외하면 바로크 음악은 드문드문 연주되는 편이었지요.

이론과 실천이 결합한 시대 악기

시대 악기의 부활은 대략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난 현상입니다. 1950~1960년대부터 유럽 전역에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와 트레버 피넉 같은 '고음악의 선구자'들이 속속 등장했어요. 특히 이들은 "악보와 문헌 연구, 악기 수집과 복원을 통해서 바로크 시대의 옛 악기와 연주 방식을 되살리자"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현악이나 건반 악기들은 바로크 시대의 악기를 그대로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문헌과 도판을 보면서 예전 스타일로 다시 제작했지요. 박물관이나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악기들을 찾아내서 다시 만들고 연주법까지 익혀서 무대에서 직접 들려줬다는 점에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지요.

처음에는 괴상한 악기들을 들고나와서 낯선 곡들을 연주하는 이들의 모습에 반발도 적지 않았어요. '이단'이나 '반골'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 이후에 클래식 음악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모차르트·베토벤부터 쇼팽·라흐마니노프까지 고전·낭만주의 인기곡들을 쳇바퀴처럼 맴돌던 관행에서 벗어나서 연주 곡목이 급속하게 확대됐지요.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음악까지 무대에서 선사하는 '음악의 밥상'이 한층 풍성해진 것입니다.

시대 악기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호응을 얻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이들의 연주 방식이 시대적 트렌드로 부상했습니다. 가정 살림이 좋아지면 다채로운 별미를 찾게 되는 심리처럼, 음악에서도 다양성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지요. 녹음 기술과 음반 산업의 발전 덕분에 더 많은 곡을 더 쉽게 녹음할 수 있게 된 것도 '고음악 부활'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현대식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시대 악기의 장점을 수용하는 연주 방식을 '절충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1세기에는 클래식 음악계도 공존과 포용이 대세가 된 셈입니다.
인기 트럼펫 연주자 앨리슨 발솜이 현대식 밸브가 없는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어요. /워너 클래식
인기 트럼펫 연주자 앨리슨 발솜이 현대식 밸브가 없는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어요. /워너 클래식
프랑스의 바로크 명문 악단인 ‘루브르의 음악가들’이 지난달 내한 공연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교향곡을 옛 악기들로 들려주었어요. /아트센터인천
프랑스의 바로크 명문 악단인 ‘루브르의 음악가들’이 지난달 내한 공연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교향곡을 옛 악기들로 들려주었어요. /아트센터인천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