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한센병 환자 40년 돌본 외국인 간호사들, 공연으로 재탄생

입력 : 2024.06.17 03:30

세상의 편견에 맞선 사람들

뮤지컬 ‘섬’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섬’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라이브러리컴퍼니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의 작은 섬, 소록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의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 하여 소록도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하지만 어여쁜 이름과 달리 이곳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외딴섬으로 오랫동안 기억돼 왔어요.

한센병은 나균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으로 신경의 변화를 동반한 피부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체 외적인 변화가 눈에 띄지요. 한국한센복지협회에 따르면, 한센병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주도로 시작된 답손·클로파지민·리팜피신 등 3가지 약의 병용 치료를 조기에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해요. 또 한센균을 많이 배출하는 급성기 한센병 환자와 밀접한 접촉을 장기간 해야 전염이 되는 등 쉽게 전염되지는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약물 치료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시기에 소록도라는 고립된 공간에 갇히면서 한센병 환자들은 사람들의 눈과 기억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한센병 환자들 돌본 두 명의 외국인

기본적인 인권마저 박탈당하고 수난의 역사를 겪어온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소록도에 이들을 보살피러 온 외국인 간호사가 두 명 있었습니다. 1934년생인 마리안느 스퇴거(90)와 고(故) 마가렛 피사렉(1935~2023)입니다. '큰 할매'와 '작은 할매'라는 애칭으로 불린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은 소록도에서 각각 43년, 39년간 봉사하며 한센병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섰지요. 한평생을 한센인들과 함께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2005년 늦가을 소록도 사람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고국으로 떠납니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자신들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짐이 될 것 같은 마음에 조용히 편지만 남기고 떠난 것이지요. 이들의 삶과 소록도에 착안한 뮤지컬 '섬'(5월 22일~7월 7일·국립정동극장)이 공연 중입니다.

뮤지컬은 이들이 산 90년가량의 시간을 세 시대로 나누고, 그 시대를 살다 간 각기 다른 주인공의 삶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먼저 1930년대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에 대한 차별과 잘못된 인식이 극에 달한 시기였어요. '낙원의 섬'이라는 말을 듣고 소록도로 찾아온 한센병 환자들은 불법 감금당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시절을 견뎌내야만 했지요. 하지만 그런 섬에서도 사랑은 피어났습니다. 한센인이었던 백수선과 박해봉은 연인이 되어 함께 섬을 탈출하려 하지만 간신히 백수선만 섬을 빠져나와요.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되고 백수선은 다른 이와 결혼해 고영자라는 딸을 얻습니다. 시간은 1960년대로 흘러 소록도에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오게 됩니다.

장성한 고영자는 소록도에서 마리안느, 마가렛과 함께 한센인을 보살피죠. 고영자의 딸 고지선은 지원을 낳지만 발달장애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백수선에서 고영자로 그리고 고지선으로 삼대에 걸쳐 소록도와 연관된 여성들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지요. 배우 12명이 30개 넘는 배역을 소화해 내고 독창에서 합창을 넘나들며 음악으로 감동을 전해주지요.

행동하는 지식인

서양 역사에는 세상의 편견에 맞선 지식인이 많습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1840~1902)가 그중 한 명입니다. 그가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에 발표한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에밀 졸라의 인생을 건 구호와도 같습니다.

독일 간첩으로 몰린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이 글은 사건의 진실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했어요. 1894년 드레퓌스가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고 1906년 복권되기까지 12년의 기나긴 시간 동안 진실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도화선이 됐어요.

드레퓌스가 독일에 전달했다는 편지는 사실 그의 필적과 일치하지도 않았고, 드레퓌스의 유죄 선고 후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국가와 군대는 철저히 침묵하며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증거가 명확하지 않았음에도 드레퓌스가 유죄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지요.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 정신이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로 처참히 무너지는 것을 본 졸라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문학적 성과와 명예, 나아가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고 글을 썼습니다. 실제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 발표 후 온갖 협박으로 영국에 망명을 떠났고, 결국 의문의 질식사로 생을 마감하는데요. 이런 졸라의 삶이 뮤지컬 '에밀'(6월 11일~9월 1일·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로 만들어졌지요.

뮤지컬은 에밀 졸라를 찾아온 클로드라는 한 청년과의 만남을 그립니다. 졸라와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폴 세잔의 그림을 전하러 왔다는 그는 졸라와 같은 위대한 작가를 꿈꾸고 있다고 말하죠. 졸라는 클로드를 보며 자신의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고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립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졸라는 끊임없이 살해 협박을 받고 목숨까지 위험해집니다. 뮤지컬은 드레퓌스의 무죄 선고를 4년 앞둔 1902년 졸라가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뮤지컬은 에밀 졸라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의 마지막 시간들로 압축하고, 한 인간이 편견에 맞서는 고뇌는 다채로운 조명의 변화와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어느 시대든 차별과 편견은 넘쳐나요. 이에 맞서 진실의 편에 선다는 건 인생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보면, 에밀 졸라의 말처럼 진실은 전진하는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소록도병원에서 마리안느(오른쪽)와 마가렛이 환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 제공
1960년대 소록도병원에서 마리안느(오른쪽)와 마가렛이 환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 제공
뮤지컬 ‘에밀’ 무대 모습. /프로스랩
뮤지컬 ‘에밀’ 무대 모습. /프로스랩
에밀 졸라 초상화. /위키피디아
에밀 졸라 초상화. /위키피디아
에밀 졸라가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에 발표한 글 ‘나는 고발한다’. /위키피디아
에밀 졸라가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에 발표한 글 ‘나는 고발한다’. /위키피디아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